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정동영 자신이 종북주의 증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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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진
논설위원
정치전문기자

정치인 정동영은 집권당 대통령 후보를 지냈고 지금은 제1야당 최고위원이다. 그의 성장에는 ‘언론’이란 두 글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메인 뉴스 앵커(main news anchor)를 지낸 스타 방송기자 출신이다. TV가 없다면 그의 출마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언론이 그를 국민 속에 심어주었고, 정치인으로 키워냈다. 언론은 그의 은인이다. 그가 은혜를 갚는 길은 언론인 출신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누구보다 진실과 논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거꾸로 간다. 다른 분야 출신보다 더 심하게 진실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6·15 남북정상회담 11주년인 지난달 15일, 그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가) 천안함 사건의 과학적 설명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 북한 아니면 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태도는 우격다짐”이라고 주장했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 어뢰 잔해가 발견됐고, 선진국이 참여한 국제조사단이 결론을 내렸으며, 선진국 의회 모두가 이를 인정했다. 그런데 정작 피해국의 통일부 장관과 대통령 후보를 지낸 사람이 “과학적 설명에 실패”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시국대담에서 그는 연평도 사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평도를 포격한 그 포탄 속에는 상대방을 죽이려는 증오와 적개가 서려 있지 않는가. 또 정당방위였지만 거기에 대해 응사한 것 역시 증오심이 묻어 있다.” 아니 그렇다면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이나 남한의 반격이나 모두 똑같은 증오란 말인가. 20년 가까이 기자를 한 사람이 도발의 증오와 응징의 분개심도 구분하지 못하나. 그는 마치 주사파 선배 밑에서 ‘남북화해론’을 공부하는 운동권 신입생 같다.

 강희남 목사는 이적단체 범민련의 초대의장을 지낸 골수 종북(從北)주의자다. 그는 ‘김일성 영생(永生)론’과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옹호했다. 그는 2009년 6월 유서에서 “살인마 리명박”에 대한 민란을 선동하며 자살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정동영 의원은 “불의 앞에 불꽃같이 살다 가신 분”이라고 칭송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통일부 장관 시절 그는 김정일에 대해 “통 큰 지도자라고 밑에서 얘기” “국제정세에 관심이 높고 정통”이라고 묘사했다. 2007년 저서에서는 “대단히 시원시원하고 결단력을 갖춘 인상”이라고 예찬했다. 그의 말대로 김정일은 ‘통 크고 시원시원하게’ 어뢰로 46명을 죽였다.

 손학규 대표가 최근 민주당 내 ‘종북진보’ 흐름을 경고했다. 늦었지만 올바른 문제 제기다. 그런데 정동영 최고위원은 당내에는 햇볕정책만 있을 뿐 종북진보는 없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종북진보의 증거다. 살인자 북한보다 피해자 남한을 다그치고, 도발자 북한의 증오와 반격자 남한의 분개심이 같다고 하는 게 종북이 아니면 뭐가 종북인가. 골수 종북주의자를 의인(義人)으로 치켜세우고, 긴장 속에서 의연히 다뤄야 할 북한 독재자를 공개적으로 칭송하는 게 종북이 아니란 말인가.

 더욱 심각한 건 일탈(逸脫)이 그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였던 지도자가 그러니 다른 일탈이 이어져도 당이 제대로 규탄할 수가 없다. 당이 추천한 천안함 조사위원이 ‘좌초설’을 주장하고, 헌법재판관 후보가 ‘직접 보지 못해 천안함 폭침을 믿을 수 없다’고 해도 이를 꾸짖는 목소리가 당에는 없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진실의 낙오자다. 진실의 바위에서 이렇게 미끄러지는 사람이 통일부 장관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됐다. 정동영은 과거 자신이 보도했던 뉴스테이프를 다시 봐야 한다. 자신에게도 한때는 진실을 추구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권력으로 가도 언론인은 언론인이어야 한다. 언론의 자력(磁力)을 벗어나선 안 된다. 언론인 출신은 다른 이에 앞서 진실의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개척자는 못될망정 낙오자여서야 되겠는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