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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은 그냥 피는 것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5호 31면

인상주의 대표 화가인 클로드 모네의 ‘수련(睡蓮)’ 연작을 검색하다 그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정원 작은 연못에서 자라고 있던 수련을 통해 생명의 움직임을 관조한 것이다. 그 속에는 그가 전하고자 했던 빛 에너지와 정화의 흐름이 있다. 시대와 지역은 달라도 화폭에서 풍기는 기운은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삶과 믿음

그날 이후 작품에 담긴 하늘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어느 날 아침, 지루했던 장맛비가 개자 그 느낌을 전달받고 싶었다. 문득 원불교 영산성지 보은강 연꽃 방죽이 생각났다. 영성이 어린 땅으로 달려가는 마음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서해안고속도로의 세찬 바람을 헤치고 도착한 영산성지 보은강. 흰꽃, 노랑꽃, 분홍꽃 자태들은 청아하고 단아한 새색시 같았다. 해맑은 아침 햇살과 붉은 노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정화가 되면 저런 표정일까 싶다. 방죽을 세세히 살펴가다 보니 자홍색의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부처꽃을 비롯해 방석이나 돗자리로 많이 만들어 썼던 부들이 바람의 숨결 따라 손짓하는 모습이 정겹다. 그 옆에 있던 수줍은 노랑어린연꽃과 열매 맺은 꽃창포엔 잠자리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수면 위에는 작으면서도 가치가 있는 물개구리밥과 마름이 돋보인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수생식물이 물을 정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냥 지나쳤으면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이 무언의 가르침은 자신의 내면 정화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나 자신은 얼마만큼 정화를 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의 성격이 강하다.

느낌의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말과 생각으로 정화가 되는 줄로 알았다. 이번 수생식물들은 느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게 했다.

정화의 의미를 일깨워준 수생식물에 대해 합장한 후 영산성지 내 찻집인 성래원(聖來苑)으로 향했다. 이것 역시 심신 정화를 위해서다. 여래봉에서 채취해 법제한 녹차 한잔을 마시면서 자연의 숭고함에 감탄했다. 자연이 주는 은혜에 대해서다.

마침 성래원을 방문한 구십 노구의 박은국 향타원 종사는 차 마시는 자리에서 “여여차(如如茶), 맛있다”라는 말씀을 남겼다. 박 종사의 법문은 정화의 궁극 경지인지 모른다. 바로 일여(一如)다. 모든 게 한결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문밖에 나설 때도 작은 목소리로 ‘참 좋다’라고 되뇐다. 종사의 가르침은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다. 매일매일 새롭다는 것이다.

짧은 한 말씀에서 맑고 청아한 에너지를 전달받았다. 늘 새로움으로 살면 욕심이 담박하고 생각이 고상하여 맑은 기운이 위로 오를 수 있고 대자연과 같이 호흡할 수 있다는 느낌이다. 또 다시 한 생각이 스친다. 맑은 기운을 가지기 위해서 심신 간 정화를 얼마만큼 했는가,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가 뒤돌아보았다. 이를 통해 아무 준비 없이 그냥 그대로 사는 것은 땅 사람임을 알게 됐다. 땅 사람은 욕심이 많고 생각이 비열하여 탁한 기운이 아래로 처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박 종사는 밖에 서 있던 후진에게 이름을 묻고는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이었다. “날마다 좋은 날 되라”는 말씀을 잊지 않았다. 감복이 됐다. 스승의 한 말씀이 큰 힘이 됐다. 아내와 자식, 부모님, 주위 인연들도 새롭게 보면 더 없이 소중하다는 가르침이다. 영산성지에서 전달받은 감동은 산 경전이었다. 새롭고 새롭기 위해 끊임없이 정화하라는 메시지인지 모른다. 물의 요정인 수련은 그냥 피는 것이 아니다.



육관응 원불교신문 편집국장. 글쓰기사진을 통해 명상과 알아차림을 전하고 있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은 음식이야기, 자연 건강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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