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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조용환 표결’ 길 잃은 한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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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민주당이 추천한 조용환(사진)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하려던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30일 열리지 못했다. 여야 위원 13명 중 과반을 차지하는 7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원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날 선출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도 무산됐다.

 한나라당은 특위 회의 불참 이유로 ▶조 후보자의 안일한 국가관 ▶4차례 위장 전입 사실 등을 통해 드러난 부족한 도덕성을 들었다. 국가관 논란은 그가 청문회에서 북한의 천안함 사건과 관련,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소행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답변함에 따라 촉발됐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30일 국회 본회의 의사 일정에 (조 후보자 선출 안건을) 넣지 않기로 하자’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황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통상 다른 당이 추천한 인사에 대해선 비토하지 않는다”며 “민주당에서 시간을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함께 8월에 열기로 한 임시국회 때 조 후보자 선출 문제를 처리하기로 했다.  

“사퇴할 생각 있나요” 질문에…조 후보자 “죄송” 전화 끊어

조 후보자 선출과 관련한 표결이 미뤄지자 한나라당에선 “청문특위에서부터 조 후보자를 부적격 처리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나경원 의원은 “당의 정체성이 걸린 일인데 너무 안일하게 처리했다”며 “ ‘부적격 소견’으로 보고서를 채택한 뒤 본회의로 보내 선출안을 부결시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역시 경선 후보로 나선 유승민 의원도 “우리 장병들이 산화한 사태에 대해 ‘안 봐서 모르겠다’고 하는 건 헌법재판관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이라며 “조 후보자 선출을 당론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황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가 청문특위 회의에 소속 의원들을 보내지 않은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당내에 서울대 법대 출신인 조 후보자와 친분이 있는 의원들이 적지 않아 표결이 이뤄지면 20여 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져 선출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있고, 그 경우 황 원내대표의 리더십엔 큰 손상이 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엔 서울대 법대 출신 의원이 26명이 있다. 조 후보자와 사법시험(24회)에 함께 합격한 의원도 3명이 있다. 한 청문특위 위원은 “서울대 법대 출신 한나라당 의원 중 몇 사람이 ‘조 후보자를 잘 봐달라’고 은근히 부탁하더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덕분에 민주당은 조 후보자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릴 수 있게 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이 추천한 사람에 대한 선출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 김 원내대표는 당직에서 물러나는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후보자를 질타하는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선출안 표결을 밀어붙였다가 부결될 경우 김진표 원내대표가 짊어지게 될 큰 부담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곧 물러날 걸로 보이는 김준규 검찰총장의 후임자에 대한 8월 국회의 인사청문회 때 민주당의 ‘관용’을 기대하고, 민주당은 8월에 시도할 조 후보자의 선출안 표결 때 한나라당의 협조를 기대하면서 일종의 ‘정치적 거래’를 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조 후보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안함 관련 발언에 대한 입장은.

 “국회에서 성의를 다해 얘기했다. (특위) 속기록을 보고 알아서 판단해달라.”

 -청문회 때와 입장이 같다는 얘기인가.

 “그런 얘기를 한 게 아니다. ”

 그는 “‘자진사퇴설’이 나오는데 그럴 용의가 있느냐”는 물음에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남궁욱·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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