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재량권 함정에 빠진 국세청 세무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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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출신 이희완씨가 받은 30억원은 도대체 무슨 돈일까. SK 측은 이씨가 운영하는 세무회계법인에 정상적인 자문료를 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직원 5명인 회계법인에 몇 년간 매달 5000만원이란 거액을 준 것에 대해 납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앞서 부산지방국세청 국장 출신 김모씨도 세무조사 청탁 명목으로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아 구속됐다.

 기자는 전·현직 국세 공무원들을 비리집단으로 공격할 생각은 없다. 다만 현재 세무조사의 문제점은 꼭 짚고 싶다. 국세청 세무조사는 광범위한 재량과 비밀주의, 잘못된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 이걸 바꾸지 않으면 비리는 재발될 수밖에 없다.

 1년에 세무조사를 받는 법인은 전체 중 1% 정도다. 하지만 ‘1%’를 골라내는 과정을 외부에선 전혀 알 길이 없다. 물론 국세기본법과 관련 훈령에 개괄적인 조사 기준은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납세 성실도를 분석하고 평점을 매겨 대상자를 선정하는지는 일체 비공개다. 국세청은 “관련 지침을 공개할 경우 해당 기업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비밀주의는 비리의 싹을 틔우는 온상이 되고 있다. 감사원의 2010 회계연도 결산검사 보고자료를 보면 국세청이 탈루 혐의 금액을 낮춰 세무조사를 면제받게 하거나 ‘면제 대상’과 ‘조사 대상’을 뒤바꾸는 사례까지 나온다. 조사가 공개적으로 이뤄졌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국세청은 광범위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 대상자 선정, 기간, 범위 등을 모두 결정한다. 이런 광범위한 재량과 앞서 언급한 비밀주의가 합해지면 파괴력은 불문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전직 간부들에게 거액을 주며 세무조사 리스크를 낮춰보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생존본능일지 모른다. 게다가 전·현직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국세청 특유의 조직 문화도 여전히 작동 중이다.

 국세청의 한 간부는 “제도보단 결국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맞다. 하지만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면 제도 개선 여지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전관예우 금지 규정을 담은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에 세무회계법인이 제외된 것부터 바로잡는 건 어떨까.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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