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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힘 합쳐 세계와 경쟁하는 협력구도 만들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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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호 04면

경제 영역에는 ‘산업의 해외 이전’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 경제에 미친 피해는 25조 엔. 1분기 성장률 -3.5%,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가장 큰 원인은 부품 공급망(서플라이체인)의 단절이다. 동북 지방에서 생산하던 자동차·전자부품 공급이 일부 중단됐다. 3월에만 자동차 생산이 52만 대 줄고 2분기에도 100만 대 생산 차질을 빚었다. 원전 발전 중단에 따른 전력 부족도 발목을 잡는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설비 일부를 해외로 이전하고 소재·부품의 해외 공급망을 확보하는 등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아와야 쓰토무 서울재팬클럽 이사장 겸 미쓰비시코리아 사장

일본 기업들은 특히 위기 극복 대안으로 한국과의 협력 강화를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국수출입은행과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은 2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양국 기업의 제3국 공동 진출 지원을 위한 금융협력 강화방안’을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아와야 쓰토무(粟谷勉·59) 미쓰비시코리아 사장은 “지진 사태는 일본 기업이 글로벌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세계와 경쟁하는 협력구도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와야 사장은 한국에 진출한 300여 개 일본 기업을 대표하는 서울재팬클럽의 이사장도 겸한다.

그는 “대지진은 부품 재고를 안 남기는 ‘저스트인타임(Just in Time·JIT)’ 방식의 공급망을 붕괴시켰다. 다원화가 시급해졌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고, 한국 기업이 만든 부품을 일본으로 들여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JIT는 도요타 자동차가 처음으로 도입해 각광을 받은 생산 방식이다. 하지만 고베 대지진에 이어 이번 동일본 대지진처럼 갑작스런 자연 재해가 발생했을 때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는 “공급망을 일본·한국으로 이중화하면 지진 같은 돌발사태에 훨씬 잘 대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의하면 일본 제조업체의 해외 생산비율은 2009년 말 현재 17.2%다.

그는 “지금까지 일본 기업이 일제 부품을 선호했지만 한국의 품질이 올라갔다. 대부분 품질은 비슷하고 일부는 한국산이 나은 경우도 있다. 품질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지진 이후 한국에서 만들어진 부품을 사용하니 적자가 감소한 경우가 있다. 한국산 부품도 괜찮다는 것이 일본 기업의 일반적인 평가다.”

-일본은 지금까지 대만을 주요 부품 공급 파트너로 삼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한국을 대안으로 내놓은 이유는.
“일본이 한국보다 대만을 선호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비용 절감에 내몰리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대만을 선호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만은 중국과의 연대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경제구조나 사회 구조가 비슷하다. 급속하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인구구조의 문제까지 공유한다. 장기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언론은 그렇게 보는 것 같지 않다.
“한국 언론은 일본 지진으로 인한 공백을 한국 기업이 공격적으로 파고들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본 언론은 한국 기업이 공격적으로 진출한다고 걱정한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진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동일 시장으로 생각하면서 협력하며 사는 게 필요하다. 과거에는 한국이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하느라 적자가 났다. 그런데 지진 이후에는 한국이 수출한다고 일본 언론이 경계한다. 이는 잘못됐다. 한국과 일본은 더 크게 봐야 한다. 도쿄와 오사카에서 서로 수출입한다고 적자가 난다고 따지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도 ‘하나의 경제권(one economic zone)’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일본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싸워 이기기 위해 그래야 한다. 제3국에서 한·일 양국이 힘을 합쳐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이 일본과 손을 잡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나.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큰 힘이 될 것이다. 일본의 풍부한 자금은 든든한 금융 배경을 제공할 수 있다. 통합된 한·일 시장은 양국 기업의 내수 확보에 도움이 된다. 연간 300억 달러의 대일 무역적자도 줄일 수 있다. 삼성과 소니를 보면 우호적으로 건전하게 경쟁하는 한편으로 부품 등에서 협력한다. 일본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양국이 새로운 에너지 협력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미쓰비스상사는 한국가스공사(KOGAS)와 손잡고 인도네시아 천연가스(LNG) 개발에 나섰다. 28억 달러를 투자해 2014년부터 연간 200만t의 LNG를 생산하게 된다. 미쓰비시와 현대로템은 인도 벵갈루루와 뉴델리에 지하철 차량 600여 대를 함께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자원 개발 같은 경우 한국에서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기업들보다 한·일 정부 간에 먼저 협력 관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중국을 보라. 자원·에너지·광물 개발을 정부가 나서서 한다. 이 분야는 민간 기업만으로는 할 수 없다. 민간은 민간끼리, 정부는 정부 사이에 협력할 사업이 많다. 장기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통합된 경제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체결하면 좋을 것이다. 우선은 양국이 수출신용기관(ECA) 간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수출신용을 제공하면 기업들이 마음 놓고 자원 개발이나 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데 이런 감정이 방해되지 않겠나.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갈수록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미래를 보고, 해외를 보고 있다고 믿는다. 일본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와야 쓰토무 사장과의 인터뷰는 우야마 도모치카(宇山智哉) 일본 대사관 경제부장·공사가 도움을 줬다. 그는 줄곧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한다”고 했고 “그런데 양국 정부가 이를 정책적 차원에서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아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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