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낙동강 전선 B-29 융단폭격, 효과는 의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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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전쟁 일기
윌리엄 T 와이블러드 엮음
문관현·손석주·김택·오충원 옮김
플래닛미디어, 818쪽
3만8000원

61년 전의 6·25전쟁을 읽는 조감도(鳥瞰圖)다. 지금까지의 전쟁에 관한 대부분의 기록이 지상군이나 지상의 민간인 시선에서 살펴진 것이라면, 이 책은 전쟁에 뛰어든 미국 공군의 최고 사령관이 남긴 일기가 토대가 됐다. 지상군의 눈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눈으로 전쟁의 상당 부분을 관찰하고 기록한 내용이다.

 일기의 주인공은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당시 일본 도쿄에 주둔 중이던 미 극동군사령부 소속 극동공군 사령관이다. 전선에 나선 지휘관이 일기를 남기는 것은 사실 금기(禁忌)다. 적에게 쫓겨 도주했을 때 내부의 상황을 기록한 일기를 뺏기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주 꼼꼼한 일기를 남겼다. 한국에서 김일성 군대의 남침으로 벌어진 전쟁의 초반과 중반까지의 과정이 아주 상세하게 드러난다.

 특히 지상의 포병과 함께 현대전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공군이 한국에서의 전쟁을 어떻게 수행했는가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이 김일성 군대의 침공에 밀려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교두보에 명운을 걸었을 때 미 공군이 펼치는 대규모 융단폭격이 눈길을 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발진한 미 공군 B-29 폭격기 5개 편대 98대가 낙동강 서쪽 약목과 구미 사이 가로 5.6㎞, 세로 12㎞의 직사각형 구역에 3234발, 총 900t에 달하는 폭탄을 떨어뜨리는 장면이다.

 지상에서 본 이 폭격은 거대한 미군의 화력과 정교한 전쟁 동원 시스템을 의미했다. 그러나 당시 미 공군에서는 폭격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폭격이 너무 넓은 지역에서 실시됐다’거나 ‘심리적인 것 이외에 적에게 어떤 실질적인 피해를 입혔다는 데에는 의문이 든다’(193쪽)는 식이다.

 스트레이트마이어의 일기가 빛이 나는 대목은 이런 곳이다. 당시 전쟁은 기습적인 남침을 벌인 북한군을 미군의 강력한 화력과 대규모 동원 시스템에 의존해 밀어 올리는 과정이었다. 미 공군이 보유한 각종 폭격기와 전투기는 미 지상군의 155㎜ 야포와 더불어 적의 공세를 꺾는 첨단무기였다. 그러나 미 공군은 좀 더 보완할 부분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효과적으로 적에게 폭격을 가하기 위한 지상군과의 유기적인 협조관계 등이 그것이다.

 개전 초반은 아예 그런 여유가 없었다. 미 공군은 일본에서 발진해 곧장 북한의 각종 시설을 폭파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초반에는 따라서 단순한 폭격이 주를 이뤘으나, 전쟁이 더 펼쳐질수록 지상군과의 긴밀한 연락망을 유지하면서 효과적인 공격을 벌여야 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전쟁이 중반에 접어들수록 미 공군이 지상군과의 치밀한 연계를 통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적을 공격해야 하는지 등의 고민이 자주 등장한다.

 중공군의 개입이 이뤄지는 50년 10월 말의 상황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대목이다. 중공군의 참전을 아주 냉소적으로 보고 있던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부의 분위기가 은근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 9월 28일의 서울 수복식에서 감격에 겨워 잠시 연설을 멈췄다는 맥아더의 모습 등은 다른 책자 등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어려운 기록이다.

유광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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