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정책 결정 때 국가 장래 생각하는지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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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부 장관 - 경제 5단체장 만남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 5단체장 간담회’에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왼쪽)이 굳은 얼굴로 기자들을 쳐다보고 있다. 허 회장 건너편으로 박 장관(오른쪽)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앉아 있다. [김도훈 기자]


허창수(63)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함에 있어 국가의 장래를 생각한다는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24일 이명박 대통령의 ‘순장(殉葬)조’로 불리는, 측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다.

 허 회장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사공일 한국무역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경제 5단체장은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박 장관 취임 후 첫 상견례를 했다. 행사장에 도착한 장관은 5단체장과 차례로 두 손을 부여잡고 악수하며 허리를 90도 꺾어 인사를 했다.

 직사각형 테이블에 박 장관과 허 회장은 마주 보고 앉았다. 박 장관이 모두발언을 했다.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고자 노력하겠다”고 한 뒤 “상반기에 유가와 통신요금을 솔선해서 인하해줘서 국민을 대신해 감사드린다”는 덕담을 덧붙였다.

 이어 허 회장이 “취임을 축하드린다 ”며 인사말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어조가 달라졌다.

허창수 회장은 “해외에서는 상법이나 공정거래법 등 기본 시스템도 일시적 흐름에 좌우되기보다 경제 원리에 맞게 신중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재계에서는 현행 공정거래법이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거느리지 못하게 묶어두고 있는 것이나, 공정위가 최근 대기업들을 거세게 조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이 팽배해 있다. 허 회장은 “(외국은) 재정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추세”라고도 했다. 무상급식이나 반값 등록금처럼 재정에 부담을 주는 포퓰리즘 정책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며 “오늘날 우리가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함에 있어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과연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많은 의문이 든다”고 했다.

 허 회장이 작심 발언은 지난 21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 자리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허 회장은 “포퓰리즘 하는 사람들이 잘 생각하고 내놓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치권이 반발했다. 허 회장을 국회로 불러 청문회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허 회장은 강도를 낮추기는커녕 24일 작심 발언 2탄을 꺼냈다. 이날 만남이 공개된 것은 거기까지였다. 만남은 오후 1시45분까지 이어졌다. 한편 허 회장은 29일 여야 정치권이 여는 대·중소기업 상생 공청회에 참석 요청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대해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며 “서민 중심 원칙을 가지며 대기업을 편들지 않았다고 무원칙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의 발로”라며 허 회장의 이날 발언을 비판했다.

글=권혁주·조민근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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