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10분간만 촬영을 허용하는 50년 관행을 지지옥션배가 깨뜨렸다. 한국기원은 사전에 출전 기사들에게 양해 편지를 보냈다. 사진은 여자 최연소(15세)인 최정 초단(왼쪽)이 시니어팀 김종수 7단을 꺾고 2연승하는 장면. 대국 내내 촬영했으나 두 기사의 포커페이스가 여전해 예전 사진과 큰 차이가 없다. [지지옥션 제공]
서양의 체스 사진은 눈빛까지 영롱하게 살아 있는데 바둑 사진은 왜 표정이 없을까.
바둑대회는 초반 10분만 사진촬영을 허용한다. 일본에서부터 이어져 온 오랜 전통이다. 양궁에서 활 시위를 당길 때는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듯이 바둑도 승부처에서 고심할 때 셔터나 플래시가 터진다면 승부에 방해가 된다. 마지막 초읽기에 몰렸을 때는 더욱 심각하다. 프로는 마지막 30초 초읽기 때 29초에서 착점하는 경우가 흔한데 이때 셔터 소리나 플래시는 중대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사진 촬영을 처음 10분으로 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처음 10분은 바둑에서 아무 고뇌가 없는 시간이다. 사진을 찍어 봐야 두 사람이 젊잖게 앉아 있는 똑같은 모습이 반복될 뿐이다. 결국 현 제도로는 좋은 사진을 찍을 방도가 없다. 바둑 한 판은 열정과 고뇌, 분노와 탄식으로 점철돼 있는데 그 내면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줄 수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획기적 방안은 진정 없는 것일까.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과 한국기원 양재호 사무총장이 머리를 맞댄 끝에 이벤트성이 강한 지지옥션배부터 사진 촬영을 풀 오픈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바둑도 전문가를 고용해 대국 내내 지켜보며 ‘표정이 살아있는 사진’을 만들어내자고 합의했다. ‘처음 10분간만 촬영’이란 50년의 금기를 깨보잔 얘기였다. 평가가 좋다면 이 방식을 모든 기전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이 사진이다. 여류팀의 15세 신예 최정 초단이 속기의 명수 서능욱 9단을 격파한 뒤 김종수 7단과 맞선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대결 2국.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사진 속 얼굴들은 여전히 포커페이스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일까. 아무리 기다려도 프로기사들은 포커페이스를 허물지 않았던 것일까. 바둑 팬들의 좋은 의견을 기다려 본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