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해병대 간 현빈에 죽고 못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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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가깝고도 먼 땅 북한에도 스며들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모여 한국 가요에 맞춰 춤을 추듯 평양 대학생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반주만 녹음된 한국 노래에 맞춰 단체로 춤을 춘다. 최신 한국 드라마를 접한 주민들은 현빈과 하지원, 이범수에 열광하고 있다. 실시간 한류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한국 방송 프로그램 DVD가 북한에 몰래 유통되면서 한류가 퍼지기 시작했다.

20일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북한의 젊은 청년들이 몸에 딱 달라붙는 '뺑때바지'에 하이힐을 신으며 '밥은 굶어도 한국 노래나 영화는 보는' 한류의 주도층으로 떠올랐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중국동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한국의 흥행작이 평양이나 대도시에 뒤늦게 인기를 끄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웃어라 동해야"마이더스' 등 최신 한국 드라마들이 북한을 휩쓸고 있다. 국가에서 통제를 해도 몰래 구해 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평성의 40대 여성 김모씨는 "10년째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며 "이범수와 하지원이 연기를 가장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연예인들의 옷차림, 헤어스타일 등을 따라 하는 젊은 세대 때문에 '뺑때바지'나 '찡바지' '삼피스' 등의 신조어도 생겼다. 뺑때바지와 찡바지는 몸에 달라붙는 바지인 '스키니진'을, 삼피스는 '원피스'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 여배우처럼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현빈처럼 머리를 세우거나 염색을 하는 젊은 남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어떻게 한국 영상물을 접할까. 근원지는 중국이다. 옌지·단둥·선양 등 중국동포 거주 지역 PC방들이 위성방송 시청 시설로 한국 방송을 실시간 녹화해 손님들이 컴퓨터에서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깔아놓는다. 이 방송들은 불법 CD나 DVD로 제작된 뒤 한국 방송을 사가려는 북한 밀수업자들에게 판매된다. 한류 열풍이 어찌나 뜨거운지 북한에서 '드라마장사꾼'은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직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한국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 DVD 대여 가격은 보통 2000원 정도다. 북한에서 쌀 1kg이 약 2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밥은 굶더라도 한국 드라마는 봐야겠다'는 주민들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편 북한 주민들이 드라마나 영화 등 '허구'로만 한국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균형 있게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북한 주민은 "어두운 길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사람들 막 죽이는 깡패 영화는 한심하다. 남한 사람들의 연애는 수시로 상대를 바꿔 난잡하다"며 "북한의 영화가 선전·교양용 이듯, 한국의 영화도 그렇게 연애하라고 선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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