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이러려고 싸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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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한심하다”고 질책했던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갈등이 20일 일단 봉합됐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이날 ▶검찰은 경찰에 대해 ‘수사 지휘권’을 유지하고, ▶경찰도 ‘수사 개시·진행권’을 갖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앞서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오전 청와대에서 이귀남 법무부 장관,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조현오 경찰청장 등을 불러 막판 담판을 벌여 이 같은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그러나 이번 형소법 개정안을 두고 “이 대통령이 한심하다고 했던 검경 싸움이 더 한심한 말장난으로 끝났다”(민주당 이석현 의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개정안엔 논란의 원인이 됐던 형소법 196조 1항(검찰의 수사 지휘권 조항)이 기존의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여야 한다’는 것에서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문구로 고쳐졌다.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정한중 교수는 “이 정도 안에 합의할 거였으면 왜 그렇게 시끄럽게 여론전을 펼치면서 싸웠느냐”고 했다. 변호사 출신인 한나라당 손범규 의원도 “실질적으론 (수사 지휘권에 대해선) 아무것도 바뀐 게 없지 않으냐”고 했고, 법무부 차관 출신의 민주당 신건 의원은 “검찰 역사상 모든 수사권을 갖겠다고 한 적은 없다”고 질타했다.

 개정안에는 또 ‘사법경찰관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식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 사실과 증거에 관해 수사를 개시·진행해야 한다’는 조항(196조 2항)과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3항)는 조항이 신설됐다. ‘범죄를 수사한 때에는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지체 없이 검사에게 송부해야 한다’(4항)는 내용도 추가됐다.

 이 중 3항의 검찰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법무부령’으로 정한다는 대목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서울대 로스쿨 신동운 교수는 이번 개정안이 형사소송은 반드시 ‘법률’에 의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헌법상 ‘형사절차 법정주의’를 무력화할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구체적 사항을 법무부령으로 정한다는 건 검찰과 경찰이 합의하면 다 된다는 것으로 국회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한중 교수도 “ 검사의 지휘권을 규정하고, 경찰의 독자적 수사 개시권을 인정해 서로 상충할 수 있다”며 “정작 중요한 건 법무부령으로 다 미뤘는데 나중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개정안 마련에 참여했던 한 정부 인사는 “검경 모두 6개월 뒤 법무부령을 정할 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6개월 뒤 검경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고정애·이철재 기자

사개특위 수사권 합의안

개정 (형사소송법 196조 1항)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해야 한다 →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신설 (형사소송법 196조 2항)
사법경찰관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식할 때에는 수사를 개시·진행한다

삭제 (검찰청법 53조)
사법경찰관리는 범죄수사와 관련해 검사가 직무상 내린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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