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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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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국에서는 총기사고(자살 포함)로 한 해 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그때뿐이다.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입김이 워낙 강한 탓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1871년 설립된 이 단체의 조직력과 자금력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원들의 이익 증대를 위해 움직이는 조직을 이익단체(interest group)라 한다. 압력단체(pressure group)라고도 하는데, 이런 용어가 처음 생겨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다. 민주주의가 확산하면서 업종·직업·인종·종교·지역별로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됐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입장이 법이나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의회·정부·정당·언론을 상대로 온갖 로비를 펼쳤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이익단체의 활동이 활발하다고 한다. 다양한 주의·주장이 표출되고 이걸 합리적으로 걸러 정책에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압력단체들이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정치인들은 이들을 표로 보고 야합(野合)하는 경우다. 이들의 이해(利害)를 감안해 법을 만들고 그 대가로 표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 경우 회원수가 곧 힘이다. 국내에선 노동조합 단체나 교사·변호사·의사 등 직능별 단체의 파워가 특히 세다. 변호사들의 일자리를 위해 내년 4월부터 상장사에 준법지원인을 두게 만든 것이 좋은 예다.

 대한약사회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단체다. 이들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회관에서 긴급 궐기대회를 열었다. 44개 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국민 편익을 위해 박카스와 같은 음료수나 마데카솔과 같은 가정상비약은 8월부터 수퍼마켓에서도 판매한다고 하자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약사회의 요구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의사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은 줄여라,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일반약은 늘려라, 의사들은 처방전에 지금처럼 특정 제약사의 제품명을 쓰지 말고 성분명만 적어라(어느 회사 약을 쓸지는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뜻) 등등.

 이익단체란 곳이 어떤 일을 하는지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수퍼에서 약을 팔면 약국들이 혹시 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수퍼에서 파는 약은 ‘수퍼 약’, 약국 약 정도는 쉽게 압도할 것이므로.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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