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오염수정화장치’ 5시간 만에 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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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지난 18일로 100일이 지났다. 일본 언론들은 “후쿠시마 원전과 일본 정치가 함께 멜트다운(meltdown·노심용융)된 상태”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사고 100일째에 나온 세 가지 뉴스는 도쿄전력의 갈팡질팡, 일본 정부의 경직된 대응, 그리고 정치권의 혼미를 상징했다. 도쿄전력은 이날 새벽 후쿠시마 제1원전의 고농도 오염수 정화장치를 본격 가동하며 “큰 산을 넘었다”고 선언했다. 원자로에서 샌 오염수 농도를 10만 분의 1로 줄여 정화한 뒤 이를 다시 원자로의 냉각수로 재사용하는 도쿄전력의 승부수였다.

 하지만 이 장치는 결국 가동 5시간 만인 18일 새벽 멈춰 섰다. 문제의 원인과 재가동 시기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가동이 시작되면) 당초 로드맵이 크게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던 도쿄전력의 장담은 하루도 안 돼 낙담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1주일 후까지 재가동하지 못하면 원전 내 오염수가 넘쳐날 공산이 크다. 이에 앞서 가이에다 반리(海江田萬里) 경제산업상은 18일 오전 기자회견을 하고 “정기검사 등으로 가동을 멈췄던 원전의 재가동을 서두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일본 내 54기의 원전 중 37기는 동일본 대지진 후 정기검사 등으로 멈춰 서 있다. 이 중 올여름까지 검사를 끝내고 운전 재개가 가능한 11기를 즉각 재가동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장들은 “가이에다 장관이나 원전 주변에 살아보라”(오사카부 하시모토 지사), “재가동의 ‘재’자도 나올 상황이 아니다”(시즈오카현 가와가쓰 지사)며 강력 반발했다. 20일로 예정된 국제원자력기구(IAEA) 장관급 회담에서 일본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급히 발표된 ‘원전 안전’ 선언이 뻔한 만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퇴진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전투구 역시 갈수록 태산이다. 한때 “(재해 복구에 가닥이 잡히면) 젊은 세대에게 총리직을 넘기겠다”고 했던 간 총리는 18일 “내가 3차 추경예산안까지 편성·처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번 주 초 부흥담당 장관을 포함한 일부 개각을 단행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조기 퇴진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간 총리가 국민의 호응을 얻기 쉬운 ‘탈원전’을 내걸고 8월 초 ‘원폭의 날’을 즈음해 국회 해산, 총선거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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