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디바는 공주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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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잠시 딴 길로 새겠습니다. 노르웨이 영화 기자에게 직접 들은 일화입니다. 영화 ‘아이언 맨’의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얘기였죠. 그가 한번은 기자들 여럿을 모아놓고 새 영화와 관련한 인터뷰를 했다 합니다. 한 기자가 대수롭지 않은 질문을 했는데, 배우가 갑자기 “당신 영어가 형편없군요. 모국어가 아닌 게 분명한데, 일단 교육부터 제대로 받고 오세요”라고 했답니다. 조금 후엔 종이에 그 기자의 얼굴을 악마처럼 그려 모든 사람에게 보여줬다네요. 그런데 제게 이 얘기를 전해 준 기자는 “그래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니까”라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클래식 음악 분야를 취재해 온 저에게도 ‘어디서 좀 들어본 얘기’로 들렸습니다. 지휘자 주빈 메타와 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계적 거장과 처음으로 통화한다는 사실에 설렜죠. “안녕하십니까. 저는…” 시작하려는 순간, “아니, 인사는 됐다”는 짧은 말이 실려 왔습니다. “시간 없다. 질문부터 하라”고 했습니다. 이해를 못 한 건 아닙니다. 메타는 잠시 후 리허설이 있다 했죠. 못내 서운했던 건 평범한 한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도 별 이유도 없이 당일 인터뷰를 취소했던 몇몇 세계적 연주자에 비하면 얼마나 친절했던지요.

199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나는 배틀에서 살아남았다(I survived the Battle)’라는 문장을 티셔츠에 새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배틀’은 ‘전투’이기도 하지만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을 의미했습니다. 배틀은 ‘싸움닭’으로 유명했습니다. 기품 있고 청아한 음성이 무색했죠. 오페라 출연을 앞두고 지휘자와 음악적 견해 때문에 싸우기 일쑤였죠. 또 음악 코치의 실력을 걸고 넘어지다 작품에서 퇴출당하기도 했습니다. 연습 시간을 마음대로 바꿔 동료 성악가들과도 척졌고요. 샌프란시스코의 단원들은 그 악명을 누누이 듣다가, 오페라 공연을 간신히 마친 후 티셔츠를 제작해 입었다고 전해집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은 꽤 일어납니다. 오페라 캐스팅은 이유 없이 바뀌기도 하죠. 몇 년 전 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오케스트라와 연습 도중 갑자기 뛰쳐나갔다는 일이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연주 전 대기실에 갖춰 놓을 생선 초밥의 개수를 지정하는 바이올리니스트, 특정 브랜드의 생수만 마시는 피아니스트, 호텔 방에 창문이 있으면 안 되는 성악가…. 보통 사람은 이들에게 “사회를 배우라”고 충고합니다.

이때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해설이 있는 음악회에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무대 위에서 ‘청중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면 연주를 망치게 돼 있어요.” 자신이 듣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우선해야 훌륭한 연주를 한다는 뜻 아닐까요. 어째 보통 사람들이 한 방 맞은 듯합니다.
연주자가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과정은 험난합니다. 일류 음악가가 대중의 시선을 먼저 고려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들이 기준을 만들면 대중이 따라가는 경우는 있죠. 그러니 넘어가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연주자니까.”

A 예술적 열정으로 봐줘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김호정 wisehj@joongang.co.kr


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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