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값싼 물건만 찾는 당신, 값비싼 대가 치르는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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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가격 파괴의 저주
고든 레어드 지음
박병수 옮김, 민음사
468쪽, 2만2000원

원서 제목은 『The Price of a Bargain』. 직역하면 ‘가격할인의 대가(代價)’다. 그런데 제목이 무섭게 바뀌어 국내에 소개됐다. 섬뜩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때는 2008년 블랙 프라이데이. 11월 추수감사절 다음 첫 금요일로 미국에서 본격적인 명절 쇼핑 시즌이 시작되는 날이다.

 쇼핑객의 쇄도로 매장이 아수라장이 된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의 월마트 매장을 보여준다. 건장한 보안 요원이 깔려 숨진다. 월마트 사건을 무정부 상태를 넘어서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값싸게 즐기는 소비 지상주의의 황금시대는 짧고, 그 시스템은 파괴돼 쉽게 복귀될 수 없다고 했다.

 값싼 물건은 극도로 최적화된 글로벌 네트워크에 의지해 생겨났다. 중국이나 동남아의 값싼 해외 노동력, 에너지, 운송시스템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한계에 도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던 중국 노동자가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불량품과 유독성 물질 함유 제품이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6년 유해 치약 사건, 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이 대표적이다. 저가 소비 경제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들린다.

 옮김이가 에필로그에서 고백하듯 저자는 대안을 명시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문맥에서는 눈치챌 수 있다. 값싼 물건의 진정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성장 없는 소비경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넌지시 알 수 있다. 생산과 소비의 지속 가능한 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잘못하면 21세기가 풍요가 빈곤이 되는 세대가 될 것이고, 값싼 물건이 정말 값비싼 것임을 입증하는 세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할인의 가격을 매기는 것은 우리(소비자)에게 달려 있다고 글을 끝맺는다.

 경제현상을 다룬 책이지만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만한 그래픽이 적어 아쉽다. 표지에 등장한 지그재그로 급락하는 꺾은선 그래프가 이 책의 유일한 그래픽이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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