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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중앙미술대전] ‘대학에서보다 군대서 더 배웠다’는 신재희씨 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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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올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쉰스터의 ‘스트리트 드라마’ 연작 일부. 영국 런던 거리 풍경이다. 도시 조경을 해치는 오렌지색 바리케이트가 이 합성사진에선 행인들의 숭배를 받는 모양새다. 작품 제목은 ‘Cult of Civilized Destruction’. 문명과 파괴의 충돌을 표현했다. 182×120㎝.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 대한민국 육군서 배운 게 더 큽니다.”

 건축과 중도포기 후 동티모르 상록수부대에서 복무하며 사진·영상을 업(業)으로 삼게 된 독학의 30대. 한국미술의 새 주인공이다.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제33회 중앙미술대전 개막·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쉰스터(본명 신재희·32)다. 서울 보문동 일곱 평짜리 월셋방서, 지인에게 빌린 돈으로 장만한 장비로 작업하던 신씨가 대상(상금 1000만원)의 영예를 안았다.

제33회 중앙미술대전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쉰스터(본명 신재희). [김형수 기자]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에 간 신씨는 휴스턴 라이스(Rice)대 건축과에 입학했다. 이 조기유학생은 제도화된 건축이 싫다며 작파하고 혼자 사진을 찍었다.

 “건축은 자격증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게 답답했어요. 만약 그림을 그리는 데 자격증이 필요하다면 그건 죽은 예술일 겁니다.”

 그는 목공작업을 하다 어깨를 다쳐 오른쪽 다리까지 마비됐다. 재활치료 후 동티모르로 입대했다. “공보병으로 복무해서 영상 작업하는 게 일이었고, 그게 건축보다 즐거웠어요.”

 예명 쉰스터는 미국서 어린 시절부터 불리던 별명이다. “제가 신가에요. 그래서 아이들이 쉰스터라고 불렀어요. ‘미스터신’이 ‘신선생’이라면 ‘쉰스터’는 ‘신가야’쯤 되는 셈이죠.”

 수상작은 ‘스트리트 드라마(Street Drama)’ 연작으로 명명한 합성사진들이다. 이런 식이다. 서울 종로의 한 낡은 파출소. 작가는 그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한 시간 가량 서서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찍은 1000여장의 사진을 갖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사람들을 고르고 빼며 한 화면 안에 합성했다. 일주일쯤 걸렸다. 길게는 석 달도 걸린다. 제목은 ‘중년간지’. 오래된 파출소 건물이 낡은 권위의 상징으로 보였다. 그 앞을 지나간 수백 명 중 폼나게 담뱃불 붙이는 주인공 등 중년 남성들이 어울린다 생각해 이들만 골라냈다.

 “오디션은 민주적이되, 캐스팅은 배타적입니다. 1000여장의 사진이라는 게 미숙한 시절의 인간관계에 대한 마음이랄까요. 모두와 친해 보려고 하던 시절이요. 혼자 작업실에 틀어박혀 구성 작업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는 합성이라 하지 않고 구성이라 부른다. 이 부분이 ‘스트리트 드라마’의 메시지다. “우리는 일상에서 벌어진 일을 ‘드라마화’해서 말합니다. 그 사건이 기쁜 일일 수도, 슬픈 일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는 겁니다.” 그에게 드라마는 ‘이미지’다.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지’일 것이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스트리트 드라마’는 우리 모두의 드라마다. 무대는 종로의 파출소 앞일 수도 있고,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정문일 수도 있고, 상하이의 어느 이름 모를 거리일 수도 있다. 각자의 무대에서 우리는 기억을 구성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가다.

 ◆전시는 29일까지=중앙일보가 주최하고 포스코가 후원하는 올 중앙미술대전에는 지난 2월 380명이 포트폴리오를 접수했다. 심사위원 세 명이 포트폴리오를 거르는 1차 심사를 통해 ‘선정작가’ 18명을 선발했다. 이들이 새로 제작한 작품을 강수미·김노암·유진상·이준 등 4명의 심사위원들이 전시장에서 직접 보며 진행한 2차 토론 심사 끝에 쉰스터가 16일 대상 작가로 뽑혔다. 우수상(상금 각 500만원)은 평면 부문의 이진한(30·영국 골드스미스대), 입체 부문의 이정배(38·홍익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씨가 공동 수상했다.

 전시는 29일까지 열린다. 1978년 시작된 중앙미술대전(fineart.joins.com)은 국내 젊은 미술작가들의 대표적 등용문이다. 이숙자(69)·박대성(66)·이종구(56)·최정화(50)씨 등 오늘날 화단을 이끄는 미술가들이 중앙미술대전을 거쳐갔다. 월요일 휴관. 02-2000-6330.

글=권근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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