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issue &] 다시 생각해봐야 할 ‘반값 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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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

최근 모임에서 만난 친구는 집 얘기부터 꺼냈다. 3년 전 2억원을 대출받아 5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는데 매달 100만원씩 3년간 3600만원의 이자를 냈고 현재 집값은 1억원 정도 떨어졌으니 약 1억4000만원의 손해를 봤다고 했다. 시세보다 2000만~3000만원 정도 싸게 집을 내놨지만 전화도 없다고 한다. 같은 자리에 있던 후배도 열을 올렸다. 전세로 살고 있는 그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해서 차라리 아파트를 살까 고민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대출 이자보다 아파트값 하락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이 두 명은 주택정책 즉 보금자리주택이 시장에서 왜곡 현상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요즘 보금자리주택지구 인근 아파트의 매매가는 떨어지고 전셋값만 치솟는 현상이 강하다. 집 가진 사람은 하우스푸어가 됐고 집 없는 사람은 전세난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보금자리주택이 매매·전세 양극화의 주범이 된 것 같다. 5차 보금자리 지구로 지정된 서울 강동구와 경기도 과천시에서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주택 정책이란 집 가진 사람과 집 없는 사람 중 한쪽으로부터는 욕을 먹게 마련이다. 양쪽에서 칭찬을 받기도 어렵겠지만 요즘처럼 모두에게서 욕을 먹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보금자리주택 정책은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주택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다. 일부 지역이긴 하나 ‘반값 아파트’가 현실화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싼 값에 계속 공급하기 어렵게 됐다. 국토해양부가 최근 주변 시세의 80~85%로 분양가를 정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그러면 과천 등지에는 6억원대 보금자리주택이 나오게 된다. 무주택 서민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다.

 게다가 서울 도심에서 20㎞ 이내에 택지를 조성할 만한 그린벨트는 거의 소진됐다. 그나마 허물 녹지도 없다는 뜻이다. 공급 주체가 안고 있는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금 돈을 댈 여력이 없다. 125조원이라는 빚을 안고 있는 LH에 선(先)투자 사업을 재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통 큰 주택’으로 불리는 보금자리주택이 민간건설업계를 고사시키며 주택시장을 왜곡하는 것은 더 큰 문제로 꼽힌다. 건설회사 입장에서 보면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정부의 횡포로 보일 수밖에 없다. 보금자리주택 인근에서 분양을 준비하던 민간 건설회사는 계획을 미루고, 분양 중이던 회사의 사업이 중단되기도 한다.

  권도엽 국토부 장관은 지난 1일 재개발·재건축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다주택자 규제 완화 등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거론했다. 좋은 방향이지만 그보다 시급한 것은 보금자리주택 정책에 메스를 대야 한다는 것이다. 싸고 좋은 주택을 무주택자에게 공급하고 기존 주택시장의 안정화에도 기여한다는 게 이 사업의 취지였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은 잃고 있고, 시장은 안정이 아니라 혼란만 심해졌다.

  보금자리주택 사업의 축소나 변경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현 정부가 보금자리주택 32만 가구를 짓겠다고 공언했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게 됐다. 지금의 주택시장이나 경기, 건설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반드시 목표를 달성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사업을 축소하는 게 어렵다면 목표 달성 시기를 많이 늦추는 방안에 대해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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