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빨리 다는 사람이 승자···방 구하기 경쟁 "별 일 다 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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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전·월세난에 방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대학생·직장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최근엔 시간과 비용을 적게 들이고 좋은 방을 구할 수 있는 인터넷 부동산 직거래 카페도 성행하고 있다. 방을 내놓는 사람이 게시판에 방의 사진과 함께 위치·면적·보증금·월세 등의 정보를 올리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댓글을 다는 방식이다. 계약은 대부분 하루만에 성사된다. 잠시 망설였다가는 다음 대기자에게 넘어간다. 그래서 게시판에 올라오자마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요즘은 방 구하기도 경쟁 구도 속에 치러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집 앞에 모여…경매 현장 방불케

최근 인터넷 부동산 직거래 카페를 통해 방을 구한 이모(22)씨는 그 과정을 두고 "경매 수준이었다"고 했다. 이씨는 인터넷 카페를 하루 24시간 꼬박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알맞은 가격대의 방을 찾았다. 재빨리 댓글을 달았지만 이미 댓글을 단 사람이 있어 2순위가 됐다. 뒤이어 10여 명의 사람들이 댓글을 더 달았다. 이런 경우는 경쟁자가 많아 댓글을 빨리 단 순서대로 계약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리고 다음 날, 해당 방이 위치한 집 앞으로 댓글 1위부터 5위까지의 희망자가 모였다. 앞 순위 사람이 계약을 포기할 수도 있으니 기다렸다가 기회를 얻어보겠다는 심산이다. 1순위 해당자가 심사숙고 끝에 계약을 포기했다. 다음 차례인 2순위 이씨는 자신에게 딱 맞는 방이라는 판단에 계약을 결정했다. 그녀의 "계약할게요!"라는 한 마디에 3~5위 희망자들은 허탈한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라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댓글을 조금만 더 늦게 달았으면 큰일날 뻔 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동네에서 방구하기 '007 대작전'

지난 3월 직장인 김모(24·여)씨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거처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녀는 중개업자의 안내를 받아 동네를 돌아다니며 방 구경을 했다. 그런데 이 때 손님을 안내하고 있는 다른 중개업소 직원과 마주쳤다. 한 동네라 매물이 비슷하다 보니 구경하는 방의 코스도 겹치게 되는 것이다. 이 후 가는 방마다 서로 마주치자 경쟁이 붙었다. 더 좋은 방을 더 빨리 계약하기 위해서다.

김씨의 중개업자는 "다음 방까지 빨리 가려면 이 길로 가야 된다"며 지름길로 안내했고 "달리세요!"라며 그녀를 재촉했다. 또 "아마 저 팀은 이 다음에 XX빌라로 갈 것 같은데…거기 보단 OO빌라가 더 괜찮으니 거기부터 가시죠"라며 심리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방 구하기는 영화 속 007 작전처럼 치밀하고 긴박했다. 중개업자의 열정 덕분에 마음에 드는 방을 구할 수 있었던 김씨는 "복비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 뺄 때까지 인근 비싼 방에서 생활하며 무작정 기다리기

일반적으로 지하 층은 지상 층보다 월세가 4만~5만원 가량 저렴하다. 그래서 지하 층은 언제나 만원이다. 이럴 땐 일단 지상 층으로 세입 후 지하 층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현재 반지하에 살고 있다는 네티즌 tndrud121X는 한 인터넷 게시판에 "4층에 사는 세입자가 '언제 방 빼세요? 방 뺄 때 연락주세요'라며 쪽지를 남기고 갔다"고 글을 올렸다.

월세를 나눠내는 룸·하우스 메이트도 인기다. 하지만 '공동 생활'이라는 불편함이 있어 마음 맞는 메이트를 찾는 데에 꽤 애를 먹는다. 이럴 땐 생활 패턴이 다른 메이트를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출·퇴근 시간이 엇갈리는 직업을 가졌거나 일의 특성상 낮과 밤이 바뀐 사람을 말한다. 이 경우는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어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간혹 위험한 사례들도 있다.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네티즌 wotjX씨는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여성 메이트 구함'이라는 글을 보고 당연히 같은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전화를 했더니 남자가 받아서 무척 당황했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유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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