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이순신 기념관이 불도저식 토목공사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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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설계도 건축가 이종호 교수의 이순신 기념관 설계 투시도. 이씨는 회화나무를 심어 건물과 조경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설계했으나 실제 조경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건축가 이종호(54·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 교수)씨의 속은 요즘 새까맣게 탔다. 자식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하는 심정이다. 그는 올 4월 28일 충남 아산 현충사 경내에 새로 문을 연 이순신 기념관의 설계자다.

 하지만 그는 개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초청은 받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기념관을 찾지 않고 있다. 대신 그는 최근 최광식 문화재청장에게 e-메일을 보냈다. 이씨는 편지에서 “(개관식은) 설계자로서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그리 할 수만은 없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여러 사태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아 발걸음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속사정이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는 제도적 문제다. 건축가가 자기 작품에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다. 이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이순신 기념관 완공 과정에는 한국 공공건축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완공된 기념관 4월 28일 완공된 이순신 기념관 입구. 공간 배치나 조경에 대한 이해 없이 기념관 내부는 각종 패널과 첨단영상물로 채워졌다. 이종호 교수는 원래 의도가 구현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문화재청장에게 왜 편지를 보냈나.

 “이순신 기념관은 개인적으로도 영광이고, 의미가 큰 작업이었다. 이미 잘 알려진 충무공의 그 무엇을 또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를 고민 했다. 그러나 전시설계 등이 바뀌며 의도와 다르게 진행됐다.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잡고 싶다.”

건축가 이종호(左), 최광식 문화재청장(右)

 -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큰 것은 설계자인 내가 공사 과정을 감독하는 일, 이른바 ‘감리’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공사비 100억원 이상의 관급 공사는 설계자가 감리를 직접 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이 제도가 과연 맞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건설 우선주의 발상이다. 둘째는 전시설계의 변경이다. 본래 건물과 전시를 함께하기로 돼 있었다. 설계를 납품했는데도 중간에 바뀌었다. ”

 이 교수는 “감리란 감독 기능도 있지만, 질 관리(quality control) 기능도 있다. 선진국에서 감리를 말할 때는 설계자의 질 관리를 말하는데 국내에서는 감독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 등으로 감리기능을 ‘조사 및 검사’ 기능으로만 제한해 놓았다는 것이다. 토목공사의 경우 설계·시공·감리 등을 분리해 전문성을 높일 수 있지만 건축가의 개성을 존중해야 할 공공건축은 사정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한양대 건축학부 서현 교수는 ‘건축가 들러리론’을 제기했다. 건축가가 준공식에 초청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 공공기관이 건축가를 설계도면 넘겨주는 기술자로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시 디자인의 일방적 변경도 성토했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

 “당초 내 계획에서는 이순신 유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난중일기』가 중심에 놓이는 개념이었다. 맨 마지막 전시실에 이르면 실제 날짜와 같은 일자의 일기를 낭독하는 소리가 바닥에서 흘러나오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 이순신 기념관 세 번째 전시실에서는 노량해전 4D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다. 이 교수는 “유원지처럼 4D 영상물 상영으로 이순신을 기념하는 것은 이순신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내가 해석한 이순신은 자신과 치열하게 싸운 인간이지만,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회화나무로 채우고 싶었던 조경설계도 실현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건축은 불도저식 토목 공사가 아니라 문화다. 설계자와 소통하고 의도를 이해하려는 당국의 노력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라도 문화시설·공공청사·공연시설 등의 감리에서는 예외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건축가들이 소소한 곳까지 신경 쓰며 완성도를 높이고, 책임도 지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이은주 기자

최광식 문화재청장에게 보낸 e-메일 요약

이순신 기념관 (준공)은 오늘 우리에게 이순신은 진정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던 뜻깊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설계자로서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그리 할 수만은 없는 많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긍정적으로 기록될 일은 건축가에게 건축과 전시설계를 일관성 있게 함께하도록 한 조치였습니다. … 그러나 이미 완료한 전시설계를 무시하고 … 충무문에 이르기까지 밀식(密植)된 숲을 통과하도록 한 조경설계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부교수
[現] 건축연구소스튜디오메타 대표건축가

1957년

[現] 문화재청 청장(제5대)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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