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교통안전공단 본사 압수수색 “공직 부패 척결, 공기업 사정 신호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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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정상호 이사장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3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교통안전공단(이사장 정상호)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지난 한 달간 공단의 각종 비리를 내사해 왔다. 경찰은 이날 수사관 20여 명을 투입해 이사장실·경영지원본부장실·감사실장실·자동차성능연구소·홍보실장실 등을 뒤져 회계장부와 하드디스크 등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경찰이 공기업 직원 개인 비리가 아닌 공기업 전체에 대해 이처럼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것은 현 정부 들어 처음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압수수색은 정권 후반기 공직사회 부정부패 척결 차원에서 진행되는 경찰발 사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중순 청와대 관계자는 “공직사회 각종 비리와 기강 해이를 차단하기 위해 사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공단이 받고 있는 혐의는 우선 국고 횡령이다. 국토해양부로부터 받은 예산 가운데 쓰고 남은 자금 16억여원을 차명계좌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 지난 10년간 법인카드 카드깡을 통해 마련된 매년 수천만원의 비자금이 공단 고위 임원들에게 전달된 혐의도 잡고 있다. 카드깡을 해 준 업체를 수사할 경우 이 업체가 상대한 다른 공기업으로 수사가 번질 가능성도 있다. 공단 고위 임원들이 특정 납품업체로부터 지속적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접대를 받은 의혹도 수사 대상이다.

 ◆예산 16억원 횡령=교통안전공단은 2008년 국토해양부로부터 490여억원의 ‘특정목적 출연금’을 배정받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등에 대비해 자동차 안전성 평가설비를 개선하기 위한 예산이었다. 하지만 사업 완료 후 약 4억원이 남았다. 설비 개선을 위한 비용을 실제보다 많이 계상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고에 반납해야 할 이 돈을 공단 측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산 단계에서 사업비를 모두 사용한 것으로 보고한 뒤 잔액을 빼돌린 만큼 명백한 횡령”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공단이 2006년의 ‘도로안전시설 성능평가시험장 건설사업’에서 4억여원, 2009년 ‘건설기계 확인검사 시설 및 장비 구축사업’에서 6억여원 등 다른 사업에서도 쓰고 남은 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빼돌린 돈과 이자를 합치면 16억원에 이른다. 경찰은 돈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공단 고위 임원들이 개입했는지, 빼돌린 돈은 어디에 썼는지 등을 집중 수사할 예정이다.

 ◆수년간 억대 ‘카드깡’=경찰은 공단 측이 법인카드를 이용해 속칭 ‘카드깡’ 수법으로 거액의 현금을 빼돌린 혐의도 수사 중이다. 납품업체나 공단 인근 음식점 등에서 법인카드를 과다 결제한 뒤 차액을 현금으로 빼돌려 고위 임원들에게 상납한 혐의다. 지금까지 알려진 금액은 매달 200만~300만원씩, 수년간 총 8000여만원이다. 다른 임원들도 카드깡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빼돌린 돈의 규모가 억대로 늘어날 수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카드깡을 통한 비자금 마련은 오랜 관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공단 임직원들이 관련 업체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사장비 등을 수입해 공단에 독점적으로 납품하던 A사로부터 장기간에 걸친 금품·향응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고성표·박민제 기자

◆교통안전공단= 국토해양부 산하 기관으로 전국 13개 지사와 57개 자동차검사소가 있다. 1년 예산은 4200억원으로 1100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자동차 제작 결함 조사(리콜 업무), 철도와 항공기 안전 시험 및 심사, 교통사고 예방 및 홍보가 주 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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