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 회사 광고 제품은 가족에 권할 수 있다-이용찬 리앤디디비 대표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 광고의 룰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투 웨이 방식,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으로 광고가 즉발적(卽發的)으로 매출을 유인하는 온라인의 세계에선 광고 비즈니스 모델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용찬 리앤디디비 대표(43)는 “유통이 광고에 포함되는 인터넷 매체는 미디어 피(광고수수료) 체계도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별로 시장세분화가 안 되는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 매체는 ‘맞춤광고’가 가능해 광고의 효율성이 높습니다. 비용도 적게 들지만 비용의 로스도 적죠.”

리앤디디비는 李대표가 이끌던 리 앤 파트너스와 세계 3위의 미국계 다국적 광고대행사 DDB 월드와이드가 50대 50으로 합작해 지난 달 출범한 독립 광고대행사.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제일기획·웰콤 등에서 AE(광고기획자)로 경험을 쌓은 그는 5∼6년 전 광고제작까지 총괄하는, 영화의 감독 겸 제작자 쯤에 해당하는 ‘캠페인 디렉터’란 말을 스스로 만들어 내 정착시켰다. 95년엔 독립을 선언, 이 바닥의 첫 프리랜서 캠페인 디렉터가 되었다.

광고업계서 그는 히트 제조기로 통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한국이동통신 011),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조선무약 우황청심원),“마음을 나누어요.

정(情)”(동양제과 초코파이 정 시리즈), ‘고객이 행복해 질 때까지’(SK그룹) 등이 그의 작품. “때와 장소…”로 그는 당시 젊은 세대 취향의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로 돌아섰던 광고의 트렌드를 유머 광고쪽으로 돌려 놓기도 했다.

2년 만에 매출액을 두 배로 끌어올린 초코파이 정 시리즈 선생님·집배원편 등이 방송을 탈 땐 고마움을 전하는 팬 레터가 쏟아졌다. “학교를 그만두려다가 다시 다닌다”는 교사, “아버지에 대해 늘 불만이던 아들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됐다”는 집배원도 있었다.

95년엔 개량한복을 입은 소녀가 ‘정신대’라고 쓴 어깨띠를 두르고 서 있는 프로스펙스 정신대 광고로 역사를 상품화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카피는 “정복당할 것인가? 정복할 것인가? 역사는 되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외제 운동화 틈에서 고전하던 프로스펙스는 이 광고 덕에 발딱 일어섰다.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그가 말하는 히트의 비법은 브랜드의 컨셉트를 ‘단순한 언어’로 축약해 표현하는 것.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영상보다는 언어를 앞세운다. “한 마디로 규정하되, 그럴 수 없다면 이미 실패한 겁니다.”

나름의 철학은 “가족들에게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제품만 광고한다”는 것. 이 원칙을 지키느라 고객의 절반은 돌려보냈다. 클라이언트에게 물건값을 내리라든지 제품을 보완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서로 잘 안 맞아 돌아선 경우도 있죠. 어떻든 사기꾼이 되기 싫었습니다. 4∼5년 전만 해도 이것 저것 요구하면 ‘너나 잘해’ 하는 분위기였지만 광고주들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올해 그는 DDB의 ‘월드와이드’ 네트워크를 타고 중국·동남아 등 국내업체들의 해외시장 개척에 지원군으로 나선다. 광고가 해외시장의 첨병(尖兵)이라면 그는 수색대장이다. DDB의 공동창업주 번박은 폴크스 바겐의 ‘작은 것이 꿈(Think small)’ 광고를 만든 저명한 광고인으로 그가 대학 때부터 선망해 온 인물. 그런 DDB로부터 합작 제의를 받고 가슴이 설레었지만 그는 1년 반을 끈 협상에서 “영어권에서는 DDB가 1위지만 한국서는 아니다”며 동등한 자격을 요구했다. 리앤디디비는 93개국에 있는 2백6개 DDB 현지법인·지사 중 현지 파트너의 이름을 앞세운 세 곳 중 하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