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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 마을과 공정사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2호 35면

‘랄라라~ 랄라라~ 랄라라라라~’.
1958년 벨기에 작가인 피에르 컬리포드가 창조한 파란 난쟁이 스머프는 숲 속 마을 버섯 집에 모여 산다. 파파스머프의 리더십 아래 생활하는 이들은 사악하지만 멍청한 마법사 가가멜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원작 만화는 81년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제작됐다.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방영됐고, 한국에서도 83년 ‘개구쟁이 스머프’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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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90년대 초 스머프가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만화라는 음모론이 제기됐다. 빨간 옷차림의 파파 스머프가 카를 마르크스를 상징하고, 스머프(smurf)가 ‘붉은 아버지를 둔 사회주의자(Socialist Men Under Red Father)’의 줄임말이라는 것, 마을 재산은 공동 소유이며 모두가 ‘○○ 스머프’라고 불리는 게 마치 ‘○○ 동지’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 편리스머프·덩치스머프·농부스머프 등 다양한 직업의 스머프가 비중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것. 이 모든 게 “스머프는 사회주의 전파를 위한 위장전술이다”라는 논거가 됐다.

이 음모론이 다시 생각난 건 나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때문이다. 아이폰 이용자가 된 후 짬 날 때마다 하는 ‘스머프 빌리지’ 게임이 그것이다. 가가멜의 습격을 받고 마을을 잃은 스머프에게 새 마을을 만들어줘야 한다. 스머프를 한 마리씩 늘리고, 집을 짓고, 밭을 일궈 수확하는 게 은근히 중독성 크지만 다 큰 어른이 스머프나 키우고 있다는 걸 대놓고 말하긴 부끄러운 일이다.

어쨌거나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 마을을 운영해 보니, 음모론대로 스머프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공동생산·분배를 한다. 더 갖다 붙이자면 게임 속 스머프 마을은 내가 들인 노동만큼 수확을 얻어야 한다는 마르크스 철학과도 통했다. 마을 재건을 위해 모든 스머프는 끊임없이 일한다. 다리를 놓는 데 120시간, 집을 짓는 데 1시간, 감자를 재배하는 데 24시간, 게임 속 시간은 실제 시간과 같이 흘러간다. 기다림은 지루하다. 하지만 절대로 시간과 노력을 배신하는 일은 없다.

스머프가 땀 흘려 일한 만큼 열매가 맺히고 마을은 번성한다. 이념이 아니라 노력의 대가라는 차원에서 스머프 마을은 공정사회의 표본이다.

부패한 은행은 서민이 땀 흘려 모은 돈을 날리고, 쉬지 않고 일해도 등록금 대기도 빠듯한 현실에 비하면 흘린 땀이 반드시 보상받는 스머프 마을은 이상향에 가깝다. 이것이 게임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현금으로 게임머니인 스머프베리를 구입하면 마을을 단숨에 키울 수 있지만 순수한 노동만 얘기하자.)

때마침 스머프가 탄생 53년 만에 영화화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3D로 부활한 영화 ‘개구쟁이 스머프’에서는 가가멜을 피해 도망가던 스머프들이 마법의 문을 통해 뉴욕 한복판에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공정하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행복했던 스머프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스머프들조차 열심히 일해도 버섯 집 하나 장만 못 하고, 먹고살기 더 팍팍해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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