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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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미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돌입했다."

"무슨 소리냐. 미국처럼 건전한 성장을 하는 나라도 드물다."

최근 미국 경제의 흐름을 둘러싸고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16일 심층기사로 보도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침체를 뜻하는 스태그네이션과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을 합한 말이다. 즉 경기는 계속 안 좋으면서 동시에 물가는 상승하는 것을 뜻한다.

1970년대 미국은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던 적이 있다. 최근 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일본으로서도 그저 남의 일로만 보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 경제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공방의 시발점은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지난달 18일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이었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란 제목의 칼럼에서 "미 경제는 완전고용과는 거리가 먼데도 물가는 상승하고 있어 이미 가벼운 스태그플레이션에 돌입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근거는 최근 미 경제의 각종 지표에서 드러난다.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의 실질성장률은 전기 대비 3.1%로 전기의 성장률에 비해 0.7%포인트 떨어졌다. 한편 3월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6% 상승했다. 이는 최근 5개월 사이 가장 높게 오른 것으로 유가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크루그먼의 주장에 "오일쇼크가 스태그플레이션의 도화선이 됐던 70년대와 똑같은 구도"(국제경제연구소 필립 벨러거 수석연구원)라는 동조가 이어졌다.

이에 가장 먼저 반격하고 나선 것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다. 그는 지난달 21일 의회에 나와 "스태그플레이션 같은 일은 결코 없다"고 단언했다. 또 저명한 경제 칼럼니스트인 로런스 커들로는 지난 5일자 워싱턴 타임스에 "미국은 경제성장률이 1%를 밑도는 일본이나 서구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건전하게 번영하고 있다"고 크루그먼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 같은 낙관파와 비관파 주장의 차이는 경제지표의 접근 방식에서 비롯된다. 크루그먼 등 비관론자들은 '경기 후퇴, 물가 상승'이란 지표의 방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지표의 절대치가 과연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하는 범위에 들어갔는지를 중시하고 있다.

예컨대 GDP성장률의 경우 최근 1년 이상에 걸쳐 3~4%대에서 안정돼 있기 때문에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매던 74~75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물가도 올 1분기 성장률을 연율(1분기 성장 추세가 1년 동안 지속될 경우의 연간 성장률)로 환산하면 전년 대비 4.3% 상승한 것이 되지만, 이 역시 79년의 13.3%에 비하면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경기침체의 악순환에 빠졌던 아픈 기억이 남아 있는 데다 유가 급등에도 좀처럼 제동이 걸리지 않아 스태그플레이션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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