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어린 동생 정호, 필드에선 제게 든든한 멘토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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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남매 프로 골퍼 윤슬아(왼쪽)와 윤정호가 손을 맞잡고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윤슬아의 올해 목표는 시즌 3승, 윤정호는 신인왕을 꿈꾼다. [문승진 기자]


5일 KLPGA투어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이 열린 경기도 포천 일동레이크골프장 18번 홀.

윤슬아(25·토마토저축은행)는 합계 7언더파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날 5타를 줄인 끝에 거둔 역전 우승이었다. 2006년 정규투어 데뷔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동료 선수들의 축하 맥주 세례가 이어졌다. 윤슬아는 “평소에 술을 잘 안 마시는데 맥주 맛이 그렇게 단 줄 몰랐다”며 웃었다. 첫 우승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윤슬아는 곧바로 한국프로골프투어(KGT) 스바루 클래식이 열린 경기도 용인 지산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남자투어에서 프로골퍼로 활약 중인 동생 윤정호(20·토마토저축은행)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단독 3위로 출발했던 윤정호는 마지막 날 4타를 잃으며 공동 9위에 머물렀다.

프로 골프 남매 윤슬아·윤정호를 6일 만났다. 윤슬아는 첫 우승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고, 윤정호는 첫 우승 기회를 잡지 못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윤슬아는 프로 6년차, 윤정호는 올해 데뷔한 루키다. 프로는 누나 윤슬아가 먼저 됐지만 골프 입문은 동생 윤정호가 선배라고 했다. 윤슬아가 프로 골퍼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동생 때문이다.

“정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는데 아빠랑 함께 연습장에 가고 라운드하는 게 무척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무조건 골프를 치겠다고 아빠에게 졸랐다.”

윤슬아는 서울 도봉여중 3학년 때 처음 골프클럽을 잡았다. 보통 초등학교 4~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늦게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윤슬아는 4년 만에 프로가 됐다. 1986년생인 윤슬아는 서희경(하이트)·김보경(던롭)·홍란(MU스포츠) 등과 동갑내기다. 윤슬아는 “워낙 골프를 늦게 시작해 주니어 시절에는 같이 어울리지 못했다. 프로에 와서도 친구들은 모두 우승하는데 나만 우승하지 못해 속상했다. 혼자서 운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구력이 짧다 보니 윤슬아는 프로 무대에서도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키가 1m68cm인 윤슬아는 2009년까지 평균 드라이브 거리 260야드로 KLPGA투어에서 손꼽히는 장타자였다. 윤슬아는 “남들은 정작 프로가 되면 80~90%의 힘만으로 드라이브샷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2009년 시즌이 끝나고 나서야 거리보다는 방향성과 쇼트 게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윤슬아는 실수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 갔다. 2009년 하이원 채리티 클래식 마지막 날 17번 홀까지 유소연과 공동 선두를 달리던 윤슬아는 마지막 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또 한번 좌절을 맛봤다. 하지만 그 패배를 통해 윤슬아는 쇼트게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윤슬아가 프로 무대에서 좌절을 통해 성숙했다면 윤정호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프로무대에 연착륙했다. 키 1m72cm인 윤정호는 평균드라이브 거리가 270야드로 짧은 편이지만 정교한 아이언 샷을 자랑한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가대표를 지낸 윤정호는 줄곧 아마추어 랭킹 1, 2위를 달렸다. 하지만 정작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슬럼프에 빠지며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골프를 시작하면서 한 번도 슬럼프를 겪어보지 않았다. 대표팀 탈락을 걱정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의욕이 앞선 나머지 체력훈련을 심하게 하고, 클럽까지 교체하면서 스윙 리듬을 잃었다. 그 때 처음으로 골프가 어려운 운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번 대회에선 아쉬움이 크지만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윤슬아는 동생이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동생이야말로 정신적 멘토라고 말한다. 윤슬아는 “그동안 나도 모르게 패배의식이 강했다. 그런데 어느 날 ‘PGA투어 선수들은 모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자신감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고개를 들고 당당히 걸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마지막 날 선두에 2타 차로 뒤졌지만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윤슬아는 말레이시아에서 동생과 함께 한 동계훈련 동안 쇼트게임과 퍼팅 연습에 집중했다. 특히 9번 아이언부터 58도 웨지까지 짧은 클럽을 잡고 핀을 직접 공략하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다. 항상 발목을 잡았던 퍼팅을 보완하기 위해 하루에 4시간씩 땡볕 아래에서 퍼터와 씨름했다. 윤슬아는 “그동안 퍼팅 스트로크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 보니 퍼팅감을 찾지 못했다. 퍼터의 스윗 스폿에만 볼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방향성과 리듬감이 좋아졌다. 결국 승부는 퍼팅에서 갈린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퍼팅할 때 머리를 고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윤슬아의 목표는 올 시즌 3승, 윤정호는 신인왕이 목표라고 했다. 윤슬아는 “첫 승을 달성한 만큼 올해는 꿈을 꼭 이루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윤정호는 현재 KGT 상금 랭킹 39위(2200만원)를 달리고 있다. 올 시즌 5개 대회에 출전해 한 번도 예선 탈락하지 않았다. 윤정호는 “프로 무대에 오니 거리보다는 쇼트게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꼭 신인왕으로 씻겠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글, 사진=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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