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학, 등록금 160억 빼내 ‘건축 적립금’ 꼬리표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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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0년 2월 23일자 1면.

중앙일보가 지난해 2월 등록금 실태를 고발한 ‘대학 등록금, 그 불편한 진실’ 시리즈 기사를 게재했을 때 상당수 사립대 관계자들은 “등록금 중 일부가 적립금으로 전환되는 일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적립금은 기부자가 사용 목적을 정한 ‘꼬리표 달린’ 돈인데 어떻게 함부로 사용하느냐”는 항변도 있었다. 사립대의 주장처럼 적립금은 대학이 미래 목적을 위해 쌓아두는 돈이다. 기업이나 자선가들이 대학 발전을 위해 낸 돈이 적립금으로 쌓일 때 대학의 미래 교육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 사립대 100곳의 2010 회계연도 결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립대의 주장은 실제와 달랐다. 대학이 등록금 회계에서 꺼내 사용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임의 기금’으로 축적하거나 심지어 다른 목적(건축 등)이 있는 것으로 꼬리표를 붙이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부대는 등록금 회계에서 160억원을 꺼내 적립금으로 전환했다. 재단 법인이 낸 전입금은 고작 2억원. 그런데 등록금 회계에서 나간 160억원 중 대부분이 건축 적립금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 대학은 기업 등에서 받은 기부금도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등록금을 받아 이를 적립해뒀다가 건물을 짓는 데 쓰려 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방 사립대는 물론이고 수도권 지역 대학에서도 나타났다. 수도권 지역의 E대 관계자는 “등록금 회계에서 전입한 돈은 재건축이나 교지 확보를 위한 매입 자금으로 쓰려고 한다”며 “이것도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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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대들은 쌓여 있는 적립금을 학생들을 위해 제대로 쓰지 않았다. 경동대는 적립금 200억원을 등록금 회계로 돌린 경우다. 하지만 그 돈의 용처는 토지 매입이었다. 서원대는 지난해까지 적립금을 320억여원이나 쌓았는데 이 기간 동안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일부 사립대는 적립금 관리를 위해 정부가 개정한 ‘사학기관의 재정·회계 규칙’ 규정도 교묘하게 활용했다. 규칙에 따르면 사립대는 운영 수익 차액이나 감가상각비 범위 안에서 적립금을 둘 수 있게 돼 있다. 건물이나 장비를 사용하다 보면 마모 비용을 따져줘야 한다는 대학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감가상각비의 규모가 대학마다 산정 기준이 달라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홍익대는 감가상각비로 432억원을 산정한 반면, 한국외국어대는 1억원만 산정했다. 40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상당수 대학들은 결산서에 감가상각비 명세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어떻게 산출했는지 근거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

특별취재팀=강홍준(팀장)·김성탁·박수련·윤석만·강신후·김민상 기자

◆감가상각비=대학에서 사용하는 시설이나 집기, 설비 등은 해마다 소모되는데 이러한 가치의 감소분을 보전하는 비용을 감가상각비라고 한다. 대학은 이 비용을 적립할 수 있게 돼 있다. 적립분은 나중에 장비를 새로 구입하거나 바꿀 때 자금으로 사용된다. 대학 결산서에서 감가상각비 반영은 2010 회계연도에 처음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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