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50년] CIA처럼 정보활동에 주력, 정책 결정 과정서 빠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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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0월 9일 아웅산 테러. 버마 랑군(현 미얀마 양곤) 아웅산 묘역 참배에 나선 전두환 당시 대통령 일행을 노린 북한의 테러였다.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이 숨졌다. “전혀 몰랐다. 아무리 못된 사람들이라고 해도 남의 성지에 들어가 폭파하리라 누가 생각했겠나.”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정원장·82~85년)을 지낸 노신영(81) 전 총리의 회고다. 그는 재임 중 대북 정보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아웅산 테러를 꼽았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2010년 3월. 대한민국은 대북 정보 실패의 뼈아픈 경험을 또 해야 했다. 장병 46명이 숨진 천안함 폭침사건이다. 국정원은 수개월 전부터 취득한 수많은 정보의 점들을 선으로, 그림으로 엮어 내지 못했다.

 국정원 앞에 놓인 정보 전선(戰線)은 무한영역이다. 북한의 도발·위협은 더 교묘해졌다.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테러, 산업스파이, 해적, 사이버 안보 등 ‘신(新)안보’ 분야도 끝이 없다. 정보전에 국가 생존이 걸린 시대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신안보 위협 가운데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지만 국정원의 최우선 정보 목표는 여전히 북한”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3차장을 지낸 한기범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도 “분단국가의 숙명을 진 대한민국은 앞으로 한 세대는 더 북한 정보에 집중해야 한다”며 “통일 준비와 통일 직후 상황 관리를 위한 ‘통일 정보’에도 역량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국정원의 바람직한 위상은 무엇보다 정보 전문기관으로서의 자리매김이다. 국정원 측은 내부 개혁으로 탈정치의 과제를 완성했다고 하지만 외부의 시각은 다르다. 안보부서 관계자는 “중견 간부로 올라가면서 정치바람을 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국가보다 정권 안보를 위해 일한다’는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미국 정보기관처럼 정보를 생산·판단해 정책부서에 넘겨주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빠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은 중앙정보국(CIA)이 정보 활동 외에 해외에서 대테러 활동을 할 경우 대통령의 결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전직 핵심 정보 관계자는 “ 정보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게 정치적 논란을 없애면서 강한 정보 전문기관을 만드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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