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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위직 이직도 낙하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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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나현철
경제부문 기자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을 강화하고 청탁·알선을 금지한다’.

 지난 3일 대통령이 주재한 ‘공정사회 추진회의’에서 확정된 전관예우 근절 종합대책의 골자다. 낙하산 감사나 사외이사를 차단함으로써 권력기관과 기업 간의 구조적 유착을 막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 금융감독원이나 감사원·국세청 등의 퇴직자들은 ‘경력 세탁’까지 불사해 가며 관련 업계에 ‘영입’돼 왔다. 이들 중 일부가 경영을 감시하라는 본분을 잊고 대주주와 유착해 불법과 부실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을 반영해 이번 대책에선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대형 로펌과 회계법인을 취업심사 대상에 추가했다. 업무 관련성이 있는 직종으로의 이직 금지 기간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낫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이용해 공직자가 사리사욕을 채우는 건 당연히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직 제한을 받는 금감원 임직원의 범위를 2급에서 4급으로 확대한 건 ‘오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감원은 최하위직이 5급인 조직이다. 부국장 이상인 2급 직원이 전체의 15%가량인 데 비해 4급 이상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군복무를 마친 남자 대졸 신입사원이 만 5년을 채우면 4급이 된다. 지금은 이들을 ‘선임조사역’이라고 부르지만 몇 년 전까진 호칭이 ‘대리’였다. 아무리 낙하산이 횡행한다지만 대리급 직원의 전직까지 낙하산이랄 순 없다. 금감원 내에선 “9급부터 시작하는 공무원과 혼동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금감원의 전문성에 미칠 영향이다. 몇 년 전부터 금감원엔 변호사나 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의 입사가 늘고 있다. 소송·기업회계 등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가 많아지고 있어서다. 새로운 전관예우 근절 대책이 시행되면 이 같은 흐름이 끊길 수밖에 없다. 변호사 출신 금감원 직원이 퇴직 후 5년간 로펌에 갈 수 없고, 회계사 출신이면 회계법인에 못 갈 테니 말이다. “전문성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전문가가 금감원에 들어가는 걸 막는 대책 없는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모든 대책은 현실적이고 정교해야 한다. 취지가 좋다고 항상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라는 벼룩을 없애려다 금융시장 감독이라는 초가집을 건드리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된다.

나현철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