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키우는 아이돌’ 전략 적중 ...전 열도가 선거 광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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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요즘 선거철이다. 간 나오토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이 중의원에서 부결된 마당에 무슨 선거냐고? 중의원 선거보다 더 뜨겁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한 전국적인 선거가 현재 진행 중이다. 바로 걸 그룹 AKB48의 인기순위를 가리는 ‘제 3회 AKB48 총선거’다.

AKB48은 멤버 수가 48명이 넘는 일본의 초대형 아이돌 그룹. 도쿄 아키하바라의 전용극장에서 정기공연을 열며 20~4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으다 지난해부터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걸 그룹이 됐다. 50여 명의 멤버 중 팀을 대표해 음반과 방송활동을 할 멤버를 뽑는 행사가 바로 총선거인데, 올해 선거는 지난달 24일 시작돼 8일까지 계속된다.

방송에서는 주요 후보들의 프로필이 흘러나오고, 인터넷에는 멤버들의 현재 득표상황이 ‘속보’로 올라온다. 투표권은 AKB48의 새 싱글 음반을 사는 사람들에게 음반 1장당 1표씩 주어진다. 지난달 24일 발매된 새 싱글 ‘에브리데이 카츄샤(사진)’는 발매 첫 주에 133만 4000장이 팔려나갔다. 역대 일본 싱글 음반 사상 첫 주 최고 판매량이다. 선거결과 보고회는 9일 도쿄 무도관에서 열리는데 올해 처음으로 지상파 방송인 니혼 TV에서 생중계된다.

팬들이 이토록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 ‘내 손으로 키우는 아이돌’이라는 기획사의 컨셉트가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중복투표가 가능한 탓에 ‘음반 사재기’에 나서는 팬들도 많고, 따라서 “너무 상업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올해 한 팬이 5500장의 음반을 구입했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 하나의 인기요인은 ‘서바이벌 경쟁의 짜릿함’이다. 이 총선거는 한국의 그 어떤 서바이벌 프로그램보다도 더 잔혹한 순위 지상주의, 승자 독식주의의 무대다. 투표에서 1위에 오른 멤버는 앞으로 1년간 모든 활동에서 팀의 중심에 선다. 12위 안에 들어야 방송 및 홍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21위까지의 멤버들은 다음 번 싱글 음반의 메인 곡을 녹음할 자격이 주어진다. 22~40위까지는 음반의 커플링곡(메인곡과 함께 싱글 음반에 실리는 노래)을 부를 수 있다. 나머지는? 방송국은 구경도 못하고 그냥 아키하바라의 극장에서 줄기차게 공연만 한다.

심지어 이번 선거에 후보로 나선 멤버는 무려 150명이다. AKB48 멤버와 연습생을 포함해 68명에, 자매그룹인 SKE48에서 57명, NMB48에서 25명이 출마했다. 사진을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반에서 10번째 정도로 예쁜 아이들을 뽑았다”는, 그룹의 ‘평범 소녀’ 컨셉트를 충실히 따른 겸손한 외모의 멤버도 꽤 된다. 한국 오디션 프로 ‘위대한 탄생’을 보며 김태원의 ‘외인구단’에 끌린 것과 같은 마음일까. 어디 가서 “나는 AKB48이다” 크게 외치기도 민망할, 이 시끌벅적한 총선거에서도 들러리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소녀들 때문에 마음이 짠하다. 앨범 몇 장 사서 이 아이들에게 한 표씩 던져 줄까나. 아차,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이 뻔한 상술에 말려드는 것이었구나!

이영희 misquick@gmail.com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의 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이돌과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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