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가 ‘싸움닭’으로 확 달라진 까닭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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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LG 트윈스에 대한 질타는 뜻밖의 장소에서 나왔다. 올해 1월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구본준 LG 구단주 대행(LG전자 부회장)은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인 CES 2011을 참관했다. 뒤늦은 스마트폰 대책으로 당시 위기에 빠져 있던 LG전자에 대한 이야기를 기자들과 나누다가 그는 뜬금없이 야구 이야기를 꺼냈다.

“과거의 LG전자는 강하고 독했다. 그런데 최근 그 부분이 많이 무너져 안타깝다. 그런데 LG전자는 이렇게 해라 하면 따라오기라도 한다. 야구선수들은 안 그렇다.”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인재 확보에 대한 견해를 묻자 다시 야구로 에둘러 이야기했다. “LG전자를 잘 아는 것은 전자 직원들이다. 당분간 외부 인사 영입은 하지 않겠다. (야구에선) FA(자유계약선수) 영입을 계속했더니 2군들이 잘 크지 않더라. 독한 DNA가 필요하다.”‘인화’로 유명한 LG그룹 야구단 구단주의 입에서 ‘독한 야구’ 얘기가 나왔다. 자율야구로 1990년대를 풍미했던 LG에 변혁의 칼바람이 불 거라는 예고였다.

LG 일가의 야구단 사랑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LG의 관계자는 “일요일 경기를 반드시 이기기 바라는 이유가 있다. 월요 사장단 회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LG의 야구 사랑은 칭송과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성적이 부진한 최근엔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그룹 고위층의 총애를 받는 선수들이 고위층과 ‘직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감독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팀은 모래알이 되고 만다. ‘부잣집 도련님’들이 많은 LG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던 건 당연지사였다.

연봉 묶인 고참들 오기의 맹훈련
참고 참던 구본준 구단주 대행이 올 시즌을 앞두고 의외의 공개 석상에서 야구단에 불호령을 내린 것이다. ‘자 보세요. 실적이 부진하다고 평가받는 전자도 있지만, 제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10년 가까이 부진하고도 바뀔 생각이 없는 트윈스입니다’라고 공개 선언한 것이다. 구 대행은 이런 말까지 했다. “실력은 되지 않지만 나라도 (트윈스에서) 뛰고 싶다.”

6개월이 지났다. LG는 지금 8개 구단 중 2위를 달리고 있다. LG는 박종훈 감독을 영입한 지난해에도 초반 잠시 돌풍을 일으켰으나 이내 무너졌다. 지난해 순위는 6위. 하지만 올해는 4월부터 시작된 상승세가 꺾일 줄 모른다. LG는 1990년과 94년 두 차례 우승을 했고 97·98년 2위를 기록했다. 2002년 4위로 포스트시즌에 나간 게 마지막이었다. LG는 8개 구단 중 가장 오랜 기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팀이 돼 버렸다. 그런 ‘봄야구’ LG가 올해엔 정말 달라졌다.

LG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무려 6개월간 지옥훈련을 했다. 고강도 훈련이 장시간 이어지면 지친다. 고된 훈련으로 심신이 지칠 무렵 선수들의 오기를 불타오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신연봉제다. 선수들의 연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승리에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연봉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2년차 내야수 오지환이 두 배 이상 연봉이 오르자 자연히 선배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수들도 있었다.

구본준 부회장이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프로골퍼는 성적이 나쁘면 연봉이 아예 없다. 그런데 야구선수는 3억원 받다가 못해도 2억원은 받더라.” 개인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팀이 목표 달성을 못하면 연봉을 올려줄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도입된 신연봉제는 선수들, 특히 고참들에게 오기와 투쟁심을 불어넣었다.

요즘 LG에는 3타수 2안타를 채운 선수가 경기 후반 대충 하는 모습이 사라졌다. 한두 점 차로 뒤지고 있으면 더그아웃에선 잔뜩 긴장하고 눈을 부라리는 선수들이 보인다. 개인 성적+승리가 있어야 내년 연봉이 오른다. 트윈스의 상승세는 매우 현실적인 바탕에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김성근 감독 “LG 플레이오프 갈 것”
지난 4월 20일 SK와 LG의 경기 후 김성근 SK 감독은 “LG가 이제야 고급야구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5월이 지나선 “LG는 올해 포스트시즌에 반드시 갈 것이다. 지켜봐라. 꽤 재미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종훈 LG 감독은 최근의 성과에 대해 “겨울 훈련 때 시간만 그저 보낸 게 아니다.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난 타자들을 최대한 가동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매뉴얼을 통해 상황 훈련을 해 왔다. 그 완성도가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베테랑 타자 이병규(37)는 “안타를 때려낸 뒤 어떻게 쳤는지 모를 정도로,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할 만큼 훈련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한 겨울 훈련 성과가 올 시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현재 타격 10걸에는 이병규를 포함, 박용택(32)과 조인성(34) 등 LG의 고참 삼총사가 포진됐다. 여기에 잠수함 투수로 150㎞대의 공을 뿌리는 박현준이 다승 선두를 지키고 있다. 매년 말썽을 부렸던 외국인 선수도 올해엔 주키치와 리즈가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봉중근이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음에도 LG가 상승세를 유지하는 이유다.

물론 LG에 아킬레스건도 있다. 마무리를 고졸 신인 임찬규가 맡을 정도로 선발 이후의 중간계투와 구원투수가 불안하다. 타선도 언제든 집단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 여름 이후 LG의 상승세가 꺾이지 않겠나 하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수년 내 가장 안정된 페이스로 순위를 지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가을잔치 진출이 유력하다는 게 야구계의 전망이다.

구본준 부회장은 지난달 27일 LG전자 노조 체육대회에서 “강한 자신감과 싸움닭 같은 투지만 있다면 어떤 승부도 이길 수 있다”며 ‘싸움닭 LG’론을 꺼내들었다. 탄탄한 기본기와 강한 팀워크도 주문했다. 지금 LG 계열사에서 이 말이 가장 어울리는 조직은 ‘싸움닭이 된 트윈스’다.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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