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설(世說)

진정한 나눔 실천하는 해외봉사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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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1894년 동학운동이 일어난 후인 그해, 일본은 청일전쟁을 유발시키고 조선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갑오개혁을 추진하고 있을 당시 진외조부께서는 가장 가난하고 위험이 도사리는 한국을 혈혈단신 찾았다. 세계지리에 관심이 깊어 ‘KOREA’라는 정도만 알고 있던 진외조부께서는 가족과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진외조부께서는 청일전쟁에서의 승리로 기세등등해진 일본이 한국인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모습을 봤다. 좌절하는 한국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립심을 일깨워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학교와 병원을 설립해 교육 사업을 시작했고, 한국인들에게 좌절이 아닌 희망을 나눠주었다. 진외조부와 할아버지·아버지에 이어 나까지 우리 4대는 한국을 고향처럼 여기며, 지난 한 세기 동안 격동의 한국을 지척에서 바라봤다.

 6·25전쟁 이후 60년 만에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자유의 박탈과 나라 잃은 설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근성을 발휘하는 한국 국민의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해외에서 온 봉사자들이 있었다. 선교사를 시작으로 참전용사까지, 해외 곳곳에서 온 봉사자들이 큰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어렵고 암담했던 날들을 겪어 오며 한국은 이제 희망과 나눔이라는 단어의 힘을 알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나라에 한국의 경험을 전하고 희망과 나눔을 전하고 있다. 특히 과거에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되갚고 국제사회 문제해결에 적극 동참하고자 애쓰는 한국의 노력이 눈에 보인다. 그 노력의 중심에는 대한민국 해외봉사단 월드프렌즈코리아(World Friends Korea)가 있다. 봉사단원의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그 체계를 재정비해 제2의 도약기를 이루려 하는 모습을 보며 받았던 도움을 다시 나누려는 한국의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그동안 세계 각국으로 파견된 수많은 대한민국 해외봉사단원들은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현지 주민들에게 내 진외조부와 선교사들처럼 인종과 국가를 넘어 진정한 나눔을 준 외국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또 봉사단원들은 해외봉사를 통해 전 세계에서 다양한 문화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활동한 지역과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 파견국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풍요로운 나눔과 희망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흐뭇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