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제 view &

“해외 PF 말도 꺼내지 마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

현대는 속도의 시대다. 바다의 KTX라는 위그선이 취항하면 황해는 중국과 한국 사이의 내해에 불과해진다. 중국에서 6월이면 베이징~상하이 간 고속철도가 개통돼 수천 년 만에 공간 압축이 본격화된다고 한다. 인도는 6000마일이나 되는 황금사각형 고속도로망을 2012년까지 구축해 국토를 바꾸고 경제개발의 동력으로 삼고자 한다.

 20세기 말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가 미래 생존을 좌우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그의 말대로 속도로 시간과 공간을 정복하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어찌 보면 유럽과 중남미에까지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한류 열풍도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신속하게 확대 생산하는 우리 민족의 DNA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속도의 시대에 속도계의 바늘이 ‘0’에 멈추어진 곳이 있다. 주택 건설업계와 부동산 금융 분야다.

 며칠 전 해외 개발사업을 하는 후배가 국내 금융회사에 대규모 해외 첨단 도시개발에 대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금융회사로부터 “개발PF가 전면 중단된 것도 모르느냐, 해외PF는 말도 꺼내지 마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중국이 해외 건설시장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마당에 막연하게 국내 부동산개발 PF사태 해결을 기다린다는 것은 사업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사실 작금의 국내 PF위기 상황에서 해외PF 이야기는 뜬금없기도 하다. 국내에도 PF대출 연장이 안 돼 숨이 넘어가는 알짜배기 프로젝트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PF 위기는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폭탄 돌리기, 풍선효과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PF대출 부실의 파장이 시중은행, 저축은행으로 옮겨가다 증권사를 거쳐 개인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위기가 번지는 속도도 엄청나다. 이러다 PF대출 위기가 한국 경제를 말아먹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근본적이고 손쉬운 해법은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 부동산 경기 활성화다. 주택·건설·부동산 경기 활성화 방안이 심심찮게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무엇보다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변화의 속도를 강조하면서 미국에서는 법이 1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 행정관료 조직은 25마일의 속도로 움직이고, 기업은 100마일, 시민단체는 90마일의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고 비유했다. 그리고 집단 간의 속도 차이가 많은 문제를 낳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정치·관료 조직의 변화대응 속도가 느려 제때 정책을 수립하고 법적 뒷받침을 하지 못한 탓에 문제를 키운 것이 아닌지 곱씹어 볼 일이다.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최선의 방편이다. 그동안의 대책들은 핵심은 빠지고 곁가지만 실행됐다는 평가가 있다. 잔뜩 기대한 대책이 말잔치로 끝나거나 별 내용이 없어 오히려 시장의 불신과 대기심리를 더하는 역효과만 불러왔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이라도 분양가상한제와 DTI완화, 보금자리주택 대책의 핵심 사안을 집중해서 풀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늦지 않게 신속해야 한다.

 대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도 있어야 한다. 목표를 일치시키고 실행 부서에 세부 대책을 실시할 권한과 책임을 줘야 한다. 부처 간 이해와 문제를 조정해 대책이 적시에 시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실행이 담보된 정책은 미래 불확실성을 없애고 시장 참여자의 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