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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설움 축구하며 훨훨 날려 보낼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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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세부터 29세까지 생기발랄한 여성 열아홉 명이 모여 축구단을 만들었다. 구성원은 이화여대.서강대.한양대 등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재외동포 2, 3세와 외국인들이다. 이름은 '해오르미 FC(Haeorumi Football Club)'. '해오름+미(美)'를 발음하기 좋게 풀어쓴 것이다.

해오르미 축구단은 15일 수원 농촌자원개발연구소 잔디구장에서 발대식을 겸한 첫 훈련을 했다. 여자 축구대표팀 초대 감독을 지낸 원로 축구인 박경화씨가 무보수 봉사직으로 감독을 맡았다. 축구전문 디자이너 장부다씨가 멋진 엠블럼과 유니폼을 디자인 해줬고, 스포츠 용품업체인 푸마코리아에서 훈련용품을 지원했다.

단장 겸 주장을 맡은 홍천혜(25.사진)씨가 해오르미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재일 한국인 3세인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독도 문제로 반일감정이 높아진 얼마 전 홍씨는 택시를 탔다가 일본인으로 오인돼 봉변을 당할 뻔했다. 그 일 이후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심각한 정체성 혼란에 빠졌고, 이는 축구단을 창단하는 계기가 됐다.

"함께 공부하는 동포 친구들도 저와 같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같이 운동도 하고, 서로 돕고 정보도 나누기 위해 축구단을 만들자고 했지요."

축구를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다 대표팀의 경기를 보며 '대~한민국'을 외쳐보고 싶은 욕망이 이들을 순식간에 뭉치게 했다. 여자축구단을 만든다는 소식에 "나도 끼워달라"며 중국.러시아.몽골 등 외국인 친구들도 속속 참여했다.

해오르미 축구단은 한 달에 두 번 이화여대에 모여 연습하고, 방학 때는 전국을 돌며 친선경기를 벌일 계획이다. 벌써 대구 영진대 여자축구부(감독 백종철)로부터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제안도 받았다. 내년 독일 월드컵 때 원정 응원을 갈 생각으로 얼마 전부터 열심히 돈을 저축하고 있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홍씨는 '한국인으로서 한국말을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미국 유학을 미루고 조국을 찾았다. 일본에서 외국인등록증을 지참해야 하는 등 차별을 겪었던 그는 한국에서도 주민등록증 발급이 안돼 인터넷 카페 등록이나 홈쇼핑을 할 수 없는 불편을 겪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독도보다 더 외로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홍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글=정영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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