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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꿈꾸는 딸 마음서 힌트, 시대의 아이콘으로 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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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32면

루스 핸들러(왼쪽)가 바비 인형 탄생 35주년을 맞은 1994년 3월 열린 파티에서 바비 인형 차림의 여배우 크리스티 쿡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지금은 결혼하고 나이 30을 갓 넘긴 우리 여배우(한채영)를 세상에선 ‘바비 인형’이란 별칭으로 부른다. 아마도 그녀의 오목조목한 얼굴과 요철이 분명한 몸매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바비 인형 칭호는 이 인형을 제작하는 미국 마텔(Mattel)사도 인정한 것이라고 한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바비 인형의 어머니 루스 핸들러

바비 인형을 만든 루스 핸들러(Ruth Handler)는 1916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핸들러는 남편의 성이고 혼전 성은 모스코비치(Moskowicz)다. 1945년 그녀는 남편, 남편 친구인 해럴드 맷슨과 함께 마텔이란 조그마한 완구업체를 창업했다. 처음엔 주로 액자와 함께 기타보다 적은 4현(絃)의 하와이 전통 현악기 우크레레를 소형화한 장난감을 만들었다.

루스는 1956년 가족과 함께 스위스를 여행하던 중 성인용 독일 완구 빌트 릴리(Bild Lilli) 인형을 보게 된다. 이 플라스틱 인형은 대중지 만화에 등장하는 육감적인 바람둥이 여성을 모델로 한 것이다. 루스는 딸 바버라가 항상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조바심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어린이들이 아이 또는 동물 인형을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성인여성 인형을 만들게 됐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덴마크의 레고와 쌍벽을 이루는 완구의 대표 상품 바비 인형의 탄생이다. ‘바비’라는 이름은 딸 바버라에서 딴 것이다. 줄무늬 수영복을 입은 최초의 바비 인형은 1959년 3월 9일 뉴욕 장난감 박람회에 첫선을 보여 세상에 알려졌다. 이 날이 바비의 공식 생일이다.

세습보다 사내 유대인에게 경영 맡겨
바비는 미국 백인 중산층 이상의 여성을 상징한다. 처음 바비가 출시되었을 땐 눈매가 매섭다거나 유대인 눈매와 같다거나 하는 군소리가 있었다. 그래서 루스와 인형 디자이너들은 바비의 인상을 보다 순하게 다듬었다. 38사이즈였던 가슴도 줄였다. 18인치의 허리는 늘렸다. 그리고 인종별로 폭을 넓혔다. 금발의 바비는 백인 여성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면서 흑인, 미국 인디언, 히스패닉, 아랍인, 아시아인으로 변신했다. 한국인 바비도 있다. 이후 바비는 패션을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가 되었다. 마텔사 디자이너들은 바비를 100여 종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간으로 만들었다. 우주인·외과 의사·여성 대통령 후보·치과 의사·스튜어디스·교사·요리사·간호사 등이다. 바비 가족도 늘었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생겼다. 남자친구 켄도 등장한다. 1976년 바비는 미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지정돼 200년 후에나 개봉되는 타임 캡슐에 들어갔다.

루스는 특기할 교육 배경은 없지만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과 수완을 고루 갖췄다. 우리 여성과 같이 유대인 여성도 강인함과 아울러 내공 또한 뛰어나다. 루스는 인형·애니메이션·게임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된다. 그녀는 바비 인형을 비롯한 마텔 사의 제품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등 사업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루스는 1970년 유방암이 발견돼 치료를 받다 1980년대 초 현업에서 물러난다. 그녀는 2002년 결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경영권은 전문경영인에게 돌아간다.

로스차일드가문과 같은 예외가 있지만 유대인은 우리 재벌 기업과 달리 자식에게 기업을 세습시키지 않는다. 기업 내에 가장 싹수가 있는 유대인에게 넘긴다. 한 기업을 몇십 년 운영하다 보면 직원 중 장래성이 있는 인물이 나타난다. 또 이 사람의 검증된 능력이나 자질에 대한 구성원 간 공감대도 형성된다. 가문의 재산 보존보다 공동체의 번영을 중시하는 전통이다.

그러면 자식들은 무엇을 하나. 유대인은 13세에 치르는 성인식을 기점으로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한다. 그러고는 자기 나름의 다른 분야를 개척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벤처기업을 창업하든가, 아니면 기술개발 또는 발명 같은 것에 몰두한다. 유대인은 그들의 사회적 단위를 좁은 범위인 가족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확대된 유대 공동체에 둔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그들의 경제활동 영역 저변을 계속 넓혀나간다. 끊임없이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가족적 유대와 버금가는 공동체 구성
원 간의 견고한 신뢰가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서 만들지만 중국선 냉대
성공한 기업엔 위기도 반드시 닥친다. 2007년 마텔사는 중국에서 제작한 완구에서 인체에 유해한 납 성분이 검출돼 곤욕을 치렀다. 마텔은 그해 세 번 판매된 물품을 리콜했다. 당시 마텔은 바비 인형을 포함한 전체 생산품의 65%를 중국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했다. 노동력 착취도 도마에 올랐다. 중국 노동자들은 주말도 쉬지 못한 채 하루 15시간을 일했다. 40달러짜리 바비를 만드는 이들에 대한 임금은 시간당 20센트가 고작이었다. 막강한 경쟁자 브라츠 인형도 나왔다.

최근 마텔은 중국에서 보따리를 싸고 있다. 바비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2009년 상하이에 문을 연 ‘바비 하우스’가 문을 닫는다. 중국 소녀들은 바비와 같은 비싼 성인 인형보다 헬로 키티와 같은 귀여운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바비 디자인의 여성용 노트북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선 한 유대인 주부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따라 값싼 중국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세계화 완구가 냉대를 받는다. 이보다 얼마 전엔 미국 유대인이 설립한 대형 할인매장 기업 홈 디포(Home Depot)도 중국인의 텃세로 철수했다. 비즈니스라면 천하무적인 유대인도 중국인에겐 손을 든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중국을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힘겨운 잠재적 경쟁자이자 호적수로 여기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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