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옷 입은 동네, 영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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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은 오지 중의 오지다. 육지 속에 틀어박힌 섬이다. 세조가 단종 유배지로 영월을 낙점한 것도, 김삿갓의 후손이 영월에 정착한 것도 모두 영월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었다. 『정감록』도 십승지지(十勝之地)라 하여 ‘난을 피해서 살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영월을 꼽았다.

20년 전 흥청거리던 탄광촌은 ‘탄때’를 벗고 아담한 산속 동화마을이 됐다. 주민들이 담벼락에 그린 그림은 삐뚤빼뚤해 더 정감 있다. 아침이면 구름이 모인다는 모운동 마을.

 그러고 보니 영월(寧越)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풀이하자면 ‘무사히 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오죽 산줄기가 첩첩이 두르고 있으면 무사히 넘기를 바란다고 불렀을까. 누가 이 이름을 맨 처음 지었을까. 아마도 이 두메산골에 들어와 사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이 두메산골로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던 남는 가족이 멀찌감치서 영월을 바라보며 지은 이름일 터이다.

 하여 영월은 고개마다 산마루마다 동강 물줄기 휘도는 굽이마다 사람의 흔적이 배어 있다. 가벼운 걸음의 관광객에게는 영월의 수려한 풍광만 눈에 들어와도 호강을 말하겠지만, 영월은 그 그림 같은 풍경이 밴 사람의 흔적까지 보여져야 비로소 온전한 풍경을 완성한다.

 영월이 간직한 가장 서글픈 역사는 뭐니뭐니 해도 단종애사(端宗哀史)다. 어린 단종이 유배를 와 사약을 마시고 숨을 거둔 흔적이 영월 곳곳에 문화유적이 되어 남아 있다. 청령포의 절경은 단종이 남긴 흔적으로 인해 언제나 쓸쓸한 풍경을 빚는다.

1 둘리와 희동이가 그려진 모운동 마을의 한 집.2 영월 읍내 요리골목에 그려진 앙증맞은 벽화. 송주철공공디자인연구소가 작업을 맡았다.

 영월은 굴곡 심한 현대사를 거치면서도 특별한 흔적을 남겼다. 영월을 둘러싼 산줄기마다 탄광이 뚫렸던 시절, 이 강원도의 오지마을은 팔자에도 없는 호사를 누렸다. 1960∼80년대 영월 읍내는 탄광 경기로 흥청댔다.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영월 읍내 이른바 ‘요리골목’에 가면 옛 탄광촌의 기억을 되밟을 수 있다. 한 시절 광부들이 밤마다 점령했던 이 골목은 지금 동네 토박이 주민과 탄광노동자의 얼굴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이 들어서 있다. 이 골목에서 지척인 거리에 유명한 ‘청록다방’이 있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 나왔던 그 다방이다.

 모운동이라는 산골마을도 있다. 이 마을 역시 폐광의 흔적을 안고 사는 마을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운동 마을은 여느 폐광촌과 다른 모습이다. 2008년 행정안전부가 ‘참 살기 좋은 마을’로 지정한 뒤로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해발 700m 산중턱에 들어선 마을은 놀랍게도 동화 속 마을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풍경을 자랑한다. 20년째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김흥식(56)씨의 땀과 눈물이 사람이 떠난 마을을 사람이 찾아오는 마을로 바꿔놓았다.

 흔적은 무늬일 수도 있고, 흉터일 수도 있다. 그 차이는 흔적을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결정된다. 영월을 향해 떠나는 발걸음이 마냥 가벼워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영월에서는 풍경의 무늬를 읽기를 바란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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