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공유를 초과이익공유로 포장…학자적 양심 있다면 그래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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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정통 재무관료 출신이다. 금융시장과 환율 정책을 주로 다뤘다. 그런 자리에 있다 보면 누구나 규제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업(業)의 본질이 규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중 특히 유별났다. 2004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시절엔 원-달러 환율 지키기를 이순신 장군이 나라 지키듯 했다. 달러당 1140원을 마지노선 삼아 원화가치가 조금만 올라가도 돈을 풀었다. 최틀러란 별명도 그때 얻었다. 시장에선 “최중경과 맞서지 말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명박 정권 초 기획재정부 차관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강만수 당시 장관과 손을 맞춰 ‘환율 매파’의 진가를 과시했다. 그런 그가 기업을 지원하는 게 주 업무인 지경부 장관이 된 지 100여 일이 됐다. 이달 25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 1가 포스트타워의 장관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대뜸 물었다.

-제조업은 자율·창의가 생명이다. 규제 전문가가 장(長)을 맡아서 잘 돌아가겠는가.

 “그런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해다. 환율 정책과 제조업은 물론 다르다. 나도 너무 잘 안다. 그간 많이 (경제부처 아닌) 외곽에서 돌았다. 지원 마인드를 충분히 익히고 배워 왔다.”

 2004년 재경부를 떠난 뒤 그는 월드뱅크 이사나 필리핀 대사 등 외지로 떠돈 기간이 더 많았다. 그는 “특히 필리핀 대사는 프로모션(지원) 업무가 전부”라며 “지원 업무가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래 몸에 밴 습관과 철학은 어디 안 가는 법이다. 대표적인 게 석유값이다. 그는 취임 직후 정유사들을 압박했다. “내가 회계사 출신”이라며 장부를 다 들여다보겠다고도 했다. 그 결과 석유값 석 달간 100원 인하라는 소득을 얻었다.

 -시장에선 (규제 좋아하는) 재무부 출신답다고 한다. (100원 인하에) 만족하나.

 “정유사들은 8000억원의 손실을 떠안았다. 큰 결단을 내려준 정유사들에 감사한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이 그리 쉽게 바뀔 수 있겠느냐”며 흐릿하게 웃었다.)

 -환율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나.

 “투기꾼에게 좀 엄하게 했더니 ‘최틀러’란 별명이 붙여졌다. 투기꾼들은 한국 경제를 걱정하며 베팅하지 않는다. 우리 외환시장은 특히 외부 세력에 의한 시장 실패가 잦다. 정부의 감시가 필요하다.”

 -물가 잡자면 원화가치를 좀 높이는 게 좋지 않나.

 “물가엔 좋은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만 나쁜 영향은 2~3년 간다. 수출이 후퇴하고 기업 이익이 줄게 된다. 그 결과 투자 못하고 일자리도 사라진다. 값이 좀 비싸도 뭔가 살 수 있는 게 나은가, 아예 소득이 없어서 물건을 살 수 없게 되는 게 나은가. 물가 잡겠다고 환율 정책을 쓰는 건 절대 안 된다.”

 여전히 그는 환율 문제에 대해선 결코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적정 환율을 물어봤다. 7년 전엔 달러당 1140원을 고집했던 그였지만 이번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다만 “기업들이 내놓은 손익분기점은 1070원 정도”라며 “손익분기점이란 게 간신히 연명한다는 뜻 아니냐”고 에둘러 대답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의도적으로 각을 세웠다는 지적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낸 적은 없다. 기자들이 묻기에 대답한 것뿐이다.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이견이 없다는 얘긴가.

 “최근에도 성과공유제를 초과이익공유제로 포장하려는 시도를 하는 이들이 있다. 학자적 양심이 있다면 그래선 안 된다.”

 정 위원장이 아닌 주변 학자들을 지칭하긴 했지만, 여전히 앙금이 남은 듯했다. 그는 대신 기본을 강조했다. 납품단가 인하, 기술 공동개발 프로젝트, 판로 개척 등 당장 해야 하는 시급한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걸 놔두고 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정치적인 것만 하겠다는 것인지….”

 인터뷰가 한창인 시각 여의도에서는 마침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박 후보자는 옛 재무부 세제실에서 잠깐 일했을 뿐 학자나 청와대 참모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금융 라인을 지켜왔고 경제수석을 지낸 최 장관에게 3기 경제팀의 무게 중심이 쏠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무슨 소리. 박 장관은 인수위 시절부터 현 정부의 경제 철학과 조직에 관여했다. 국정기획수석을 하면서 전체 흐름도 꿰고 있다. 재정부 장관직 수행에 모자랄 게 전혀 없다.”

 -재정부 후배들이 최 장관을 더 무서워하고 잘 따른다는데.

 “우리는 재정부로부터 돈(예산)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박 장관 잘 모시고 지경부 일 잘 돌아가도록 하겠다.”

 최 장관 취임 이후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이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환경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사상 처음 원전을 수주하면서 생긴 기대와 자신감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순식간에 우려와 불안으로 바뀌었다.

 -원전 수출 기반이 흔들리는 것 아닌가.

 “사실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드라이브를 걸면 국제사회에서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원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만난 사람=이정재 경제데스크
정리=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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