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환경사령부, 고엽제 조사하러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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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부대 내 고엽제 매립 의혹과 관련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가 26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열렸다. 회의에 앞서 이호중 환경부 토양지하수과장(왼쪽)과 버츠마이어 주한미군사령부 공병참모부장이 악수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한·미 양국이 27일 고엽제 매몰 의혹이 제기된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캠프 캐럴에서 지하수 표본을 채취한다. 홍윤식 국무총리실 국정운영1실장은 26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열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양국은 27일 캠프 캐럴 기지 주변 10곳에서 지하수 표본 채취를 실시키로 했다”고 밝히고 “미국의 환경 전문가가 입국하는 다음 주부터 공동조사단의 본격적인 캠프 캐럴 부지 조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존슨 미 8군 사령관

홍 실장은 “미측 조사단은 미 육군의 환경사령부 소속 환경 전문가들이 참여한다”며 “땅속 레이더 투과, 지하수 표본 채취 등의 기법이 동원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 실장은 “공동조사단에는 양국 정부 및 군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 지역주민 대표 등 20명 안팎이 참가하고 캠프 캐럴 인근 주민들도 조사단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호중 환경부 토양지하수과장과 버츠마이어 주한미군사령부 공병참모부장(대령) 등이 참석, 8시간 동안 열린 이날 회의에서 양측은 ‘한·미 양국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 사항’임을 확인했다. 미국은 과거 캠프 캐럴의 조사 내용을 담은 문건 2개를 한국 측에 건네줬다. 홍 실장은 “회의에서 미측은 우리 측의 요구를 거의 다 수용했다”며 “고엽제 의혹 조사에 대한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의지를 여러 차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지난주 ‘1978년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매몰했다’는 주한미군 병사 스티브 하우스의 폭로 이후 ‘속전속결’ 모드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먼저 월터 샤프 주한미사령관이 “적극적이고 투명한 규명”을 약속했고 미 8군 사령부는 지난 25일 소속 대령 2명을 미국으로 파견해 스티브 하우스의 증언을 채록했다. 26일 존 존슨 주한 미 8군 사령관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표 투과 레이더로 캠프 캐럴의 땅속에 드럼통이 매몰돼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사령관이나 8군 사령관의 라디오 생방송 출연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주한 미군 관계자는 “고엽제 의혹이 제기됐을 때부터 주한미군 측은 신속하고 투명하게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고 그런 차원에서 한국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송 출연을 결정한 것으로 안다”며 “2002년 효순·미선양 사건 때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고엽제 이슈가 불거진 이후 미 외교·안보라인에선 ‘네버 어게인(Never Again 2002)’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23일 존슨 사령관이 총리실 육동한 국무차장을 만나 공손한 자세로 인사하는 모습도 한국민의 정서를 의식한 제스처라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한편 2003년 캠프 캐럴 기지 내 지하수에서 먹는 물 기준치의 30배가 넘는 고농도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03년 삼성물산의 의뢰(주한미군 발주)로 캠프 캐럴 내 지하수·토양 시료를 분석한 강원대 환경과학과 김만구 교수와 공주대 신호상 교수에 따르면 지하수에서 트리클로로에틸렌과 테트라클로로에틸렌 등 발암물질의 양이 먹는 물 수질기준치(건강상 유해영향 무기물질에 관한 기준)를 각각 31.1배, 33.5배를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 8군은 지난 23일 미군 내 자료를 토대로 “2004년 캠프 캐럴 기지를 13개의 시추공과 지하 투과 레이더를 사용해 조사한 결과 1개 시추공에서만 미량의 다이옥신이 발견됐다”고 밝힌 바 있다. 미 8군 측은 “문건을 토대로 ‘문제가 없었다’는 내용을 밝힌 것”이라며 “한국과 투명하고 적극적인 조사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이철재·홍권삼 기자

◆미 육군 환경사령부(US Army Environmental Command·USAEC)=미 육군의 지속 가능한 전투 능력 제고 및 병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 필요시 국내외 각 부대에 환경 전문가를 파견한다. 사령관은 스콧 킴멜(Scott Kimmel) 대령. 1972년 독극물, 화학물질 제거를 위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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