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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사랑으로 승화된 아름다운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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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좋은 일 하십니다. 참 힘드셨겠어요." 내 명함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첫 마디는 대부분 이렇다. 1991년 1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사랑의 장기기증운동을 시작했을 때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적 의식이 팽배해 있어 의료인이나 종교인조차 이 운동이 정착되려면 10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92년 6월 국내 최초로 뇌사자의 유족이 모든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했을 때, 준비된 병원조차 없었다. 모든 장기를 기증할 수 있을 만큼 기증자의 상태가 좋았지만 겨우 신장과 각막만 이식되었을 뿐이다.

이후 이 일이 국민의식 변화에 물꼬를 터 기증자는 99년 162명을 기록할 정도로 늘어났다. 시신 기증도 본부를 통해서만 92년 6명에서 2001년 130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뇌사가 법적으로 사망으로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장기이식은 기증자들의 숭고한 뜻에도 불구하고 2000년 2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될 때까지 '용감한 의사'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불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법조차 외국과 달리 장기기증과 이식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고, 관리와 감독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제정되는 바람에 오히려 2002년 뇌사시 장기기증자가 36명으로 줄고 말았다.

요즈음 많은 장기부전 환자가 아무리 기다려도 국내에서는 장기를 이식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판단, 중국으로 해외 이식 원정을 가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공항에서 신고하는 장기이식 환자가 매주 4~5명 된다고 한다. 그러나 통상 간이식의 경우에만 신고하고 있어 신장이식 환자 등을 합할 경우 그 수는 상당할 것이다.

정부가 법률을 개정해 각막기증은 발굴한 병원에서 이식하고, 뇌사자 발굴 병원에 신장 한 개를 우선 이식하는 권한을 주는 등 인센티브로 다시 기증자의 수가 늘고 있으나, 아직도 장기기증을 활성화하기엔 미흡하다. 법제정의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법제정 이전에는 뇌사자 1인당 2.6명에게 기증했으나 법시행 이후 최근에는 4.6명으로 늘었다. 긍정적 효과는 극대화하고, 미비점은 보완해 장기기증과 이식이 활성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국민이 장기기증 정보를 쉽게 접하고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요즘 한 방송국의 각막기증 방송에 힘입어 지난 4월 말까지 등록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한 해 8500여 명의 등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지속적인 공익광고로 국민의 인식을 전환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신분증 등에 '장기기증 의사표시제'를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한다.

둘째, 뇌사판정 절차에 대한 수정이다. 의학적인 전문성을 요하는 뇌사판정이 비전문가로 구성된 '뇌사판정위원회'의 승인으로 결정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외국처럼 장기이식에 관여하지 않는 신경과.신경외과 2인 이상의 의사가 판정하고, 뇌사판정위원회는 법에 따라 뇌사판정을 충실히 했는지에 대한 사후감독권을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셋째, 시스템의 변화다. 장기의 활용률이 높아진 만큼 센터는 장기의 분배와 각 기관 간의 조정역할 및 감독.통계를 담당하고, 장기이식병원은 장기이식 대상자들을 위한 수술과 관리를, 민간단체는 홍보 및 뇌사자의 발굴로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 특히 민간단체를 장기기증자 발굴기관인 독립 OPO(Organ Procurement Organization)로 지정해 적극적인 장기기증 활성화를 꾀해야 한다.

요즘 너나없이 웰빙(참살이)에 관심이 높다. 웰다잉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삶의 마지막 정점인 죽음이 아름답게, 생명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그것이 장기기증이다.

최승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