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정 45~60% 부모 경제력 세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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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국은 흔히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어떤 꼬마든 '대통령의 꿈'을 키울 수 있다. 집안 배경이나 소속된 계층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같은 믿음을 한껏 고양한 인물이 18세기 미국의 정치가이자 저술가로 활동한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그는 양초와 비누를 만드는 아버지의 15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무일푼의 인쇄소 수습공으로 출발했지만 신문사업 등으로 보란 듯이 거부가 됐다. 1828년 14세의 소년 토머스 멜론은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고 뜻을 세워 피츠버그에 멜론 은행을 세웠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출세할 수 있다는 믿음은 미국 사회의 통합성을 유지하는 원동력 역할을 해 왔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부모의 경제적 우위가 자식 세대까지 이어지는 비율을 20% 정도로 추산했다. 이 경우 아무리 부자라도 그 손자 세대에 이르면 가난했던 이의 손자에 비해 그다지 경제적 우위를 점하지 않는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 깨지고 있다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부자가 될 가능성은 지난 수십 년간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 현상=WSJ는 "여러 경제학자가 지난 10년간 조사한 다양한 결과를 종합하면 미국의 사회적 이동이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캐나다 통계청의 마일스 코락은 "미국.유럽.캐나다의 통계 자료를 보면 미국과 영국의 사회 이동성이 프랑스와 독일에 뒤지는 것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또 프랑스와 독일은 캐나다와 북유럽 국가보다 떨어졌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의 바슈카르 마줌더 연구원은 63~68년 출생자들이 20~30대에 달했을 때의 소득을 조사했다.

부모의 소득이 하위 10% 그룹에 속했던 이들 중 14%만이 상위 30%에 진입할 수 있었다. 반면 부모의 경제력이 상위 10%에 속했던 이들 중에선 17%만이 하위 30%로 추락했다. 사회 이동이 생각만큼 이뤄지지 않는다는 방증이었다.

미국의 사회계층 간 이동은 인종별로도 차이가 있었다. 미시간대가 68년부터 32년 동안 6273가구를 추적한 결과 소득이 하위 10%에 속하는 가정 가운데 자식 세대까지 같은 하위권에 머문 사람은 백인이 17%인데 반해 흑인은 무려 42%에 달했다.

◆ 이유=WSJ는 미국의 사회적 이동이 정체되는 가장 큰 이유로 대학 교육 여부를 꼽았다. 대학을 나온 이들끼리 결혼하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사회적 이동성이 제약되고 있다는 것이다. 잘 사는 부모가 건강한 자식을 낳을 확률이 큰 점, 부모의 근면한 태도나 성격이 자식에 의해 학습되고 있는 점 등도 부의 세습이 계속되는 이유로 조사됐다.

현재 미국에서 부모 세대의 경제적 우위가 자식 세대까지 이어지는 비율은 45~60%라고 WSJ는 전했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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