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 이상 현금거래 들여다 보겠다” … 국세청 ‘빅 브러더 야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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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집을 한 채 사주려는 A씨. 혹시나 세무서로부터 증여세를 추징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철저히 현금으로만 줬다. 5억원을 은행에서 3000만~4000만원씩 몇 달에 걸쳐 현금으로 분할 인출한 뒤 몇 번에 걸쳐 나눠 줬다. 계좌 이체를 하거나 수표로 주면 편하겠지만 증여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5만원권이 도입되면서 현금의 부피가 크게 줄어 생각보다 큰 불편함은 없었다. 현행법상 부모·자식 간 증여세 면세 한도는 3000만원이다.

 이 같은 고액 현금거래 내역을 국세청이 직접 열람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현재 금융회사들은 2000만원 이상 고액 현금 거래에 대해서는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이 정보는 중요한 조세범칙 사건일 경우를 빼고는 국세청이 접근할 수 없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 등 10명이 24일 발의한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의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회사에서 FIU에 보고한 고액현금거래(CRT) 내역은 1148만 건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 중 국세청에 통보된 건수는 0.4%(4만2000여 건)에 불과하다. 이 의원은 “FIU가 1차로 자료를 분석한다고 하지만 40명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사실상 자료가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미국·호주처럼 과세 목적으로 국세청이 금융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세청도 숙원이었던 금융거래법 개정이 이번에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직도 세원의 25%가 과세당국에 포착되지 않은 채 지하경제를 형성하고 있고, 그 핵심이 고액 현금 거래라는 게 국세청 판단이다. 최근 전북 김제 마늘밭에서 발견된 110억원이나 서울 여의도백화점 물품보관소에서 발견된 10억원의 현금 다발 등의 사례에서 보듯 거액의 현금 거래는 불법적인 소득이나 탈세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각종 실물거래 자료와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는 국세청이 금융 정보를 이용할 경우 거액 탈세자를 표적 조사할 수 있어 지하경제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법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거래 정보는 개인정보로서 충분히 보호돼야 한다는 게 금융실명제의 원칙”이라면서 “FIU 제도가 수사나 세무 당국에 금융 정보를 넘기기 전에 한번 걸러주는 의미가 있는 만큼 바로 국세청에 모든 자료를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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