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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사생활, 소설로나 읽읍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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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프랑스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는 거리나 궁정, 광장, 공동체 등에서 익명으로 이뤄지던 사회성이 근대에는 가정이나 개인과 밀착돼 있는 ‘한정된 사회성’으로 대체됐다고 주장했다. 함께 낸 책 『사생활의 역사』에서였다. 사적(私的)인 것과 공적(公的)인 것이 원칙 없이 뒤섞여 있던 사회에서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되고, 더 나아가 사적인 공간이 더 중심이 되는 사회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사람들이 자기만의 것, 사적인 공간과 생활을 추구하게 되면서 소설은 오히려 그 내밀한 영역을 보여주는 글쓰기로 변모했다. 더불어 근대적 출판 및 유통의 체계로의 변화 또한 사적인 글쓰기와 사적 경험으로서의 책 읽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이 영국의 소설이론가 이언 와트가 『소설의 발생』에서 말한 ‘근대소설의 탄생’ 과정이다.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위 계몽주의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이광수의 『무정』(1917)조차도 개인의 사적 공간, 사생활에 대한 흥미진진한 묘사로 독자들을 매혹했다. 소설 속 영채, 형식, 선형 사이의 연애 스토리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생 영채와 월화의 에로틱한 침실 장면은 독자의 관음증을 자극한다.

 문제는 그 사적인 글쓰기가 점점 ‘허구’로서의 소설뿐 아니라 ‘사실’을 다루는 기사, 르포, 좌담 등의 형태로 저널리즘 전반을 뒤덮어버리게 된 데서 발생했다. 옐로 저널리즘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누군가의 사생활에 대해 집요하게 캐내고 제멋대로 단죄한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새로운 미디어 시스템은 자신의 사적 경험을 고백하게 하거나 타인의 사생활을 폭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개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기도 한다.

 최근 한 여성 아나운서가 자기 목숨을 끊었다. 그럼에도 그녀에 관한 이야기들은 아직 끝난 것 같지 않다. 물론 말초적 호기심으로 그녀의 연애사, 사생활에 대해 엿보기와 막말 하기를 일삼던 사람들도 그녀가 자살하자 조금은 당황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번엔 “왜” “누가” 그녀를 죽게 만들었느냐를 두고 사람들은 더 많은 글을 써서 서로 책임 떠넘기기와 새로운 마녀사냥 대상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매번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데도 이 사생활 폭로와 엿보기의 욕망은 사그라질 기미가 안 보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렇게까지 남의 사생활이나 연애사가 궁금하다면 애먼 남의 목숨 빼앗지 말고 차라리 사적 글쓰기의 ‘원조(元祖)’인 소설을 읽자. 그러는 편이 남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훨씬 더 ‘생산적’이다.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