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피네라 전 칠레노동복지장관 인터넷 대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생산적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4대 사회연금의 부실 여부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구조적인 완결을 위해 연금제도의 충실한 운영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 시점에서 지난 1970년대말 이후 공적 연금의 민영화에 성공한 칠레의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칠레의 연금 민영화를 주도했던 호세 피네라(Jose Pinera)전 칠레 노동복지부 장관에게서 공적 연금의 민영화를 위한 경험을 들어봤다.대담은 공병호 자유기업센터 소장과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다.

-칠레는 공적연금을 민영화한 최초의 나라이다.과거 칠레 연금제도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소득 재분배의 명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소득층이나 노약자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실제로 이것이 자신의 문제가 되면 다른 반응을 보인다.누구라도 자신의 보험료를 최소화하면서 수령 금액은 최대화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이 어떤 집단도 희생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연금제도를 설계·운영하려 든다는 점이다.결국 그 비용은 미래 세대의 지불 몫으로 남을 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출생율의 감소와 평균 기대수명의 증가라는 두가지의 분리할 수 없는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이 결과 은퇴하는 근로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연금지출에 대한 부담이 커지지만 현역 근로자의 보험료 납입금은 그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로 증가하는 것이다.

이 불균형은 초기에는 조절 가능한 수준일지 모르나 곧 통제가 불가능해져 스스로 목을 조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장관이 되기 전에 이미 연금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는가.

“나는 한 주간지에 ‘연금문제가 시한폭탄이 되지 않게 하려면 하루 빨리 진정한 개혁을 시도하라.국가가 사회보장적 기능을 감당하되 최저 저축액에 대한 의무만 규정하고 어디에,어떻게 저축하는지는 국민들의 자유에 맡겨라’는 컬럼을 기고한 바 있다.

당시는 내가 장관으로 입각하여 연금개혁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때였다.하지만 우리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현대적인 국가를 이룩해야 하는 관점에서 불가피한 주장이었다.”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반대하는 세력들의 조직적인 대항이었다.첫번째는 기존 제도 내에서 특혜를 누리고 있던 기득권 세력,두번째는 사회보장 문제 전문가들이라고 자처하는 교수들,세번째는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연금관리공단의 경영자들이었다.

교수들의 불신은 상당했고 공단 관계자은 국가의 임무를 축소한다는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여기다가 노조 지도자들과 군부정권에 대항한 야당 정치인사들이 가세해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하기야 그들은 정부의 모든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세력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게다.

정작 심각한 반대자는 군사정권을 지지하는 유력 인사들과 대통령을 둘러싼 정부자문위원회의 장군들이었다.결국 대통령은 나에게 개헌안이 통과될 때까지 개혁을 보류할 것임을 통보했다.국민연금개혁의 첫 번째 시도는 이렇게 끝이 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나.

“나는 패배감을 느끼면서도 포기하진 않았다.비록 지금은 책을 덮어야 할지 모르지만 그 과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거듭한 결과일 것이다.”

-연금개혁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우선은 존엄성의 문제로 우리의 사회보장제도가 좀 더 인간본위로 변했다.이와 함께 수익성의 효과도 생겨 지난 10년간의 기금의 연평균 수익은 약 13%로 당초 기대치를 웃돌았다.”

-공적 연금의 민영화가 자유시장경제의 발전에 왜 중요한가.

“그것은 경제에 대한 국가권력의 축소를 의미한다.또 칠레의 금융시장의 근대화를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연금관리회사와 생명보험회사들은 90억 달러나 되는 기금을 칠레 기업들의 주식·은행예금·회사채·저당어음과 중앙은행의 채권에 투자하였다.이로써 진정한 증권시장을 형성시켰으며 이는 곧 금융제도 전반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연금 민영화는 전략산업이라고 불리는 에너지·전화·장거리통신 등의 국영회사 민영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그 회사들이 매각 대상에 올랐을 때 그 주식을 매입하는 중요한 재원으로 사용됨으로써 ‘경제 선순환’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칠레의 연금개혁이 성공한 이후에 어떤 나라들이 연금개혁을 시도하고 있는가.

“우리의 연금제도 개혁경험은 다른 나라의 모델로 작용했다.페루(1993)·콜럼비아(1994)·아르헨티나(1994)·우루과이(1996)·볼리비아(1997)·멕시코(1997)·엘살바도르(1998) 등이 칠레의 뒤를 따른 경우다.

그리고 당시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해 중국·러시아·동유럽에서도 관심을 표명했다.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지난해 3월 동유럽에서는 최초로 폴란드가 칠레 방식을 도입했다.”

-민영화로의 전환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은 우려할 만한 것인가.

“비행기가 중력을 이기고 비행을 시작하는 이륙시점이 가장 위험하듯이 1981년 시행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었다.그러나 우리가 내놓은 해결책들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또 한번의 위기는 83년도의 금융혼란 때 왔다.생산성 하락과 고금리,여기다가 칠레 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로 인해 국내의 대형은행들이 불안정하게 되고 급기야 1983년 1월 13일 IMF 관리체제에 들어갔다.

이 위기로 말미암아 연금관리회사의 고유 자산과 그들이 운영하는 기금을 분리한 것이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가 입증되었다.사실 몇몇 연금관리회사들은 파산하였으나 가입자들은 계좌를 다른 연금관리사로 옮겨가고 그로 인해 손해를 입은 사람은 회사의 소유주뿐이었던 것이다.”

-당신의 경험으로 미뤄 경제위기 극복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이야기해주고싶은 것이 있다면.

“자유시장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경우에 따라서는 평화적인 투쟁도 벌일 필요가 있다.나는 동키호테가 그의 하인 산쵸 판사에게 한 말을 공감하며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자유는 하늘이 준 가장 고귀한 축복 중의 하나다.이 자유는 세상의 모든 보물과 비교할 수 없다.자유와 명예를 위해 우리의 삶은 충분히 모험할 가치가 있다.’”

정리=홍병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