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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talk ⑤ 선재 스님의 ‘언 무 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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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언 무, 버섯 꼭지…먹을 궁리 하면 버릴 것 하나 없지요.”

 절에서는 음식을 버리지 않아요. 버섯 꼭지, 콩나물 뿌리, 언 무, 바람 든 무도 다 먹어요. 여기에 얽힌 일화가 있어요. 제가 막 절에 입문한 스물다섯 살 젊은 행자 때 얘기예요. 어머니가 저를 너무 보고 싶어 절에 찾아왔어요. 그때 저는 지게에 무를 져 나르고 있었어요. 다음 날이면 기온이 떨어져 무가 언다고 해서 부랴부랴 옮기고 있었거든요. 그때 어머니와 딱 마주쳤는데 이미 머리 깎고, 승복 입고, 고무신 신은 제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우시다가 졸도를 하셨어요. 어머니를 돌보다 보니 해가 지고 말았어요. 그러다 미처 다 못 옮긴 무가 얼어 버린 거에요. 산이라서 그런지 해가 금방 지고 춥더라고요.

 저 때문에 대중이 먹을 무를 얼렸으니 제가 얼마나 미안해요. 그런데 노스님이 버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먹을 궁리가 생긴다고 하면서 무를 잘라 탱자나무랑 철조망에 걸어 말리시는 거예요. 무가 얼었다 녹았다 하니깐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된 무를 방에 와서 다시 바짝 말렸어요. 그리고 물에 불려 고추장에 생강과 들기름을 넣고 버무려 구웠어요. 그걸 배추에 싸 먹었는데 그 맛이 꼭 돼지고기 같고 맛있는 거예요. 노스님은 바람 든 무를 말려 놨다가 기름에 튀기기도 하고 물에 불려 양념해 주시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결국 우리 어머니 때문에 ‘언 무 구이’를 얻어먹게 된 거죠.

 교육 당국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200∼300명씩 모아 우리 절로 보내요. 그런데 아이들이 절에서 주는 것은 절대 안 먹고 나가서 햄·소시지·라면 같은 걸 사 먹고 오는 거예요. 그래서 고안해 낸 게 두부김밥이에요. 햄·소시지·계란·단무지 대신 두부·우엉·장아찌로 맛을 낸 김밥이에요. 아이들이 정말 잘 먹었어요. 제사 지낸 두부를 다시 한 번 썰어 구운 건데 아이들은 계란인 줄 알았다나 봐요.

 아이들은 호박도 안 좋아하더라고요. 평소에 계란에 묻혀 부쳐 먹는 호박전만 보다 보니 계란 맛에 묻혀 진짜 호박 맛을 몰랐던 거죠. 그래서 “이번 한 번만 먹고 다음부터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고 하고 저만의 방식으로 호박전을 부쳐 줬어요. 호박을 채 썰어 소금만 넣어 버무려 놓으면 약간의 물기가 나오는데요. 거기에 밀가루만 묻혀 부치면 달고 맛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잘 먹어요. 이제는 아이들이 집에 가서도 된장국에 있는 호박을 다 골라 먹는다고 하네요.

 버섯 꼭지도 버리지 않아요. 표고버섯 꼭지를 푹 삼아 풋고추랑 같이 조리면 장조림 같아져요. 버섯 꼭지 조림을 먹은 아이들이 집에 가서 오늘 스님이 소고기 장조림을 해 줬다고 얘기해 시끄러웠던 적도 있어요.

 식재료 중에서 버리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영양소가 듬뿍 들어 있어요. 저는 1994년 의사가 앞으로 1년밖에 못 산다고 했던 환자예요. 간이 안 좋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건강식을 먹다 보니 아직도 잘 살고 있어요. 저 같은 환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이들한테 몸에 좋은 음식을 알려 주고 싶어요.

 정리=손민호 기자

선재 스님은 1956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80년 출가했다. 한국 사찰음식을 대표하는 스님으로, 한국전통사찰음식보존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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