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처럼 세상 바꾸겠다…애플 출신 이 남자, 성공 비결은 ‘마당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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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2003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인터넷 결제대행회사 ‘페이팰(PayPal)’ 부사장 출신 리드 호프먼(Reid Hoffman)의 머릿속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페이팰 창립멤버였던 그는 7개월 전인 2002년 10월 회사를 15억 달러에 이베이로 매각하는 작업을 주도한 뒤 새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은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와 명함철을 뒤져 350명의 지인을 추려냈다. 그러곤 각자의 직업과 전공·연락처 등 프로필을 직접 작성해 자신이 만든 인터넷사이트에 올렸다.

지난 주말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직장인 소셜네트워킹 회사 ‘링크드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350명으로 시작한 링크드인의 회원은 현재 1억 명에 달한다. 주당 45달러에 공모한 링크드인 주가도 첫날 94.25달러로 마감해 ‘대박’을 터뜨렸다. 시가총액은 89억 달러(9조7000억원)가 됐다. 21.4% 지분을 보유한 창업자 호프먼 회장도 링크드인 상장으로 18억 달러를 거머쥐게 됐다. 그 덕에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뽑는 400명 거부 반열에도 오르게 됐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을 비롯한 미국 언론이 전했다.

 호프먼의 어릴 적 꿈은 학자였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인지과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학자의 길은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 ‘기껏해야 50여 명 남짓이나 읽는 책’ 대신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세상을 바꿀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세우자고 결심했다. 첫 직장으로 애플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애플과 후지쓰를 거치며 준비해온 그는 1997년 ‘소셜넷닷컴’이란 회사를 처음 창업했다. 이때 이미 소셜네트워킹의 가능성에 눈을 뜬 셈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혜안은 90년대를 휩쓴 ‘닷컴 버블’ 속에 묻혀 버렸다. 회사도 2년 만에 접는 쓴맛을 봤다. 대신 그는 98년 페이팰 창업에 뛰어들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페이팰 부사장까지 오른 뒤 회사를 이베이에 매각하면서 새 사업을 시작할 ‘실탄’을 확보했다. 그리고 ‘페이팰 마피아’로 불리는 인맥도 얻었다.

호프먼이 링크드인을 구상하게 된 것도 오프라인에 있는 자신의 인맥을 소셜네트워킹과 접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였다.

 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 시대엔 모든 직장인이 각자 하나의 1인 기업”이라며 “비즈니스 세계의 소셜네트워킹을 통해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고 역량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마당발’로도 통한다. 그 자신이 에인절투자자이기도 하다. 2004년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에게 50만 달러라는 첫 에인절 투자를 해준 헤지펀드 매니저 피터 시얼을 소개해준 것도 호프먼이었다. 시얼은 페이팰에서 그와 손발을 맞춘 동료이기도 했다. 페이스북 외에도 그는 소셜네트워킹 게임회사 징가,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식스 어파트, 사진공유 사이트 플리커 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링크드인과 호프먼의 ‘벼락 성공’에 실리콘밸리와 월가에선 논란이 분분하다. 월가에선 90년대 닷컴 버블의 재현을 걱정하고 있다. 벌써부터 뉴욕 증시에선 링크드인에 대한 공매도(주식을 빌려 판 뒤 값이 떨어지면 되사 주식으로 갚는 거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와 달리 실리콘밸리에선 90년대와 같은 닷컴 거품 붕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반론이 나온다. 수익모델이 불투명했던 90년대 닷컴기업과 달리 링크드인을 비롯해 페이스북·트위터·징가 등 소셜네트워킹 기업은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여기다 99년 486개 기업이 공개됐던 것과 달리 지난해 이후 공개된 기업은 217개로 절반밖에 안 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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