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김기덕 1인 드라마 … 칸 움직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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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다큐 ‘아리랑’으로 칸영화제 공식 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 최고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오른쪽에서 둘째)이 21일 열린 시상식에 참석했다. 그의 왼쪽은 공동수상자인 ‘스톱드 온 트랙’의 독일 감독 안드레아스 드레센. [칸영화제 홈페이지]


그가 한국 영화계의 ‘뉴스메이커’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해외영화제에선 각광받았지만 국내에선 흥행·평가 측면에서 숱한 좌절을 맛봤던 김기덕(51) 감독. 그가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리랑’으로 21일(현지시간) 제6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상을 받으며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스톱드 온 트랙(Stopped On Track)’의 독일 감독 안드레아스 드레센과 공동 수상이다. 한국에선 ‘비주류’지만 세계에선 ‘주류’인 ‘김기덕의 역설’을 재연한 것이다.

 한국 감독이 이 상을 받은 건 지난해 ‘하하하’의 홍상수 감독에 이어 두 번째다. 김 감독은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사마리아’), 베니스영화제 감독상(‘빈 집’)에 이어 세계 3대 영화제 본상을 휩쓰는 드문 기록을 갖게 됐다. 13일 칸 현지 상영 때 머리를 풀었다 묶는 퍼포먼스로 전 세계 언론의 기립박수에 답했던 그는 이날 시상식에선 작품에 나오는 민요 ‘아리랑’의 한 소절을 부르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극단적 작가주의의 승리=‘아리랑’은 2008년 이후 강원도 산골에서 칩거해온 것으로 알려졌던 그가 3년 만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작품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조감독 출신이자 ‘의형제’ 연출자인 장훈 감독에 대한 배신감 토로, 한국 영화계에 대한 직설적 발언 등으로 논란을 불렀다.

 김 감독은 이번에 각본·연출·연기는 물론 촬영·조명·음향·편집 등 ‘1인 드라마’를 완성했다. 현지의 반응은 엇갈렸다. 영화 전문지 스크린인터내셔널은 “의심할 여지없는 궁극의 작가주의 영화”라고 칭찬했지만, 또 다른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김기덕의 골수팬조차 보기 지루한 영화”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칸영화제는 ‘주목할 만한 시선’에 오른 20편 중 ‘아리랑’에 최고상을 안겼다. ‘작가 김기덕’에 대한 상찬으로 보인다. 전찬일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예술영화의 궁극적 지향은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작가인 감독 혼자 해내는 것인데, ‘아리랑’은 그걸 성취한 명실상부한 ‘1인 영화’다. 새로운 영화를 선호하는 칸영화제 측이 김 감독의 작가성·실험성을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충무로의 아웃사이더="영화감독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어. 감독이 가장 행복하고 사람들한테 존중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그전엔 폐차장에서 차도 때려부수고 전자제품 공장에서 전자제품도 만들고 길거리에서 그림도 그렸어. 그땐 외롭고 초라하단 생각을 참 많이 했지. 난 절대 사람들한테 존중받지 못한단 생각을 했어.”

 김 감독이 ‘아리랑’에서 쏟아낸 고백이다. 이 말처럼 그는 감독이 되기까지 소위 ‘알아주는’ 직업을 가져보지 못했다.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을 전전했다. “제도권 교육은 쓸모없다.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먹고산다”는 한국전쟁 상이용사였던 아버지의 성화 때문이었다.

 해병대 근무 후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거리의 화가로 3년간 밥벌이를 하다 귀국했다. 정식으로 영화 공부를 한적도 없고 영화계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지만, 무작정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했다.

 ◆영화를 전투처럼=김기덕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헝그리 정신’이다. 초저예산으로 단기간에 ‘전투적으로’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회와 개인의 폭력성을 주목해왔다. 또 2000년대 중반까지 1년에 한 편씩 영화를 내는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하지만 그는 국내에선 ‘주류’에 섞이지 못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전까지 잔혹·엽기적인 묘사로 발표작마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리랑’은 아예 국내 시사도 하지 않고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했다. 현재 국내 개봉을 추진 중이다.

기선민 기자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경쟁 부문, 비경쟁 부문과 함께 칸영화제의 주요 공식 부문 중 하나. 말 그대로 세계 영화 중 주목할 만한, 새로운 경향을 보여 주는 영화를 초청한다. 1978년 신설된 이래 경쟁 부문 못지않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 영화 초청은 84년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가 처음이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등이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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