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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몰래 왔다 간 옛 애인 … 언제 어디서 접속했는지 다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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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추적기에 남겨진 방문자들의 접속 기록. 자신의 미니홈피를 찾은 방문자의 이름과 접속 시각은 물론 IP 주소를 통해 접속 지역도 추정이 가능하다. 추가비용을 내면 성별·나이도 알 수 있다.

“예전에 사귀던 사람이 다녀갔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에 대한 광고문구다. 방문자 추적기는 누가, 언제, 어디서 내 홈피에 접속했는지 알려주는 불법 프로그램이다. 별 생각 없이 들른 옛 애인이나 친구의 미니홈피 방문 기록 등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니홈피에 도사린 위험은 피싱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12~18일 일주일간 기자가 직접 방문자 추적기를 사용해 봤다. 추적기 설치 사이트에 들어가 1만6000원을 결제하고 ‘프리미엄 회원’이 됐다. 프리미엄 회원에겐 두 달 동안 방문자의 이름과 IP(인터넷 프로토콜)주소·접속 경로까지 알려준다고 했다. 추적기를 설치하는 데는 5분도 채 안 걸렸다. 미니홈피의 다이어리 메뉴에는 영화 평점을 매기고 감상평을 올리는 ‘리뷰’ 기능이 있다. 이 리뷰 글 속에 추적 프로그램을 숨겨 홈피 대문에 걸어두면 방문자의 접속 정보가 추적기를 구매·결제했던 사이트로 자동 전송된다. 미니홈피 주인은 실시간으로 이를 볼 수 있다. 기자의 미니홈피에 새 글이 올라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언론사 동료 기자들과 대학 선후배들이 속속 찾아들었다. 이들의 이름과 IP·접속 시간 기록은 고스란히 남겨졌다. 추적 사흘째, 방문자를 확인하던 기자의 눈이 커졌다. 입대 전 만났던 여자친구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그녀의 미니홈피에는 “곧 결혼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일주일간 기자의 미니홈피를 다녀간 사람은 모두 53명. 추적기는 그중 절반인 27명의 ‘신원’을 확인해줬다. 아직 사용 기간이 두 달이나 남은 추적기를 19일 제거하며 떠오른 건 “세상엔 모르고 살아야 더 좋은 것도 있는 법”이라는 말이었다. 

한편 싸이월드 측은 "2008년부터 꾸준히 불법 추적기를 차단하고 있다"며 "추적기는 일종의 악성 프로그램으로 해킹 등 사용자의 주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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