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여명에 이끌려 창을 열었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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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해 줄까?’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중년 남성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음성은 칼이 되어 나를 찌르고 있었다.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버린 몸은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민기의 ‘봉우리’. 그 노래를 듣는 내내 연상된 이미지는 ‘높고 뾰족한’ 봉우리가 아닌 바다였다.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강원도로 떠난 출장길 어느 늦은 밤, 그저 하룻밤 묵기 위해 찾은 바닷가 모텔. 창밖에 슬그머니 찾아 온 여명에 이끌려 창문을 열었을 때 눈이 부실 만큼 황금빛으로 빛나던 바다를 보았다. 봉우리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그렸던 바로 그 바다였다. 지난 밤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카메라를 찾아 망원렌즈를 마운트하고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그때 귓가에 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고’.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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