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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기 반성 없이 “밀리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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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안상수(左), 안경률(右)

#1. 2008년 7월 15일 국회 귀빈식당에 한나라당의 친이명박계 의원 40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결의하고 친이계 의원모임 ‘함께 내일로’를 결성했다. 그리고 최병국·심재철 의원을 모임의 공동대표로 뽑았다. 이후 이 모임의 회원은 70명까지 불어났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선 회원인 안상수 의원을 당 대표로 만드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2. 2011년 5월 18일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7층 ‘함께 내일로’ 사무처. 소속 의원들은 이날 모임 해체 문제를 논의했으나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다수 의견이 대두해 모임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논의 과정에선 “나갈 사람은 나가라고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70명에 달했던 소속 의원 중 상당수가 4·27 재·보선에서 당이 패배한 다음 모임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볼멘소리가 나온 것이다. 모임의 해체 여부를 결정하는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의원은 20명이었다.

 ‘함께 내일로’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17대 국회에서 만들었던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의 후신이다. 현 정부 출범 직후 이 장관과 가까운 의원들이 ‘함께 내일로’를 만들었고, 그동안 당내 최대 규모의 친이계 모임으로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재·보선 패배 이후 ‘함께 내일로’는 쇠락하는 형국이다. 회원 의원 70명 중 20명이 모여 모임 유지를 결정했지만 과거처럼 당 운영을 좌지우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 모임은 창립선언문에서 “현재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지 못해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이명박 정부가 사랑받을 수 있도록 밀알이 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추진했다가 ‘촛불 사태’에 직면했을 때 이 대통령의 소통 부족을 지적하면서 국민과 이 대통령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던 것이다. 그때 이 모임은 “당의 쇄신과 개혁에도 앞장서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함께 내일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모임에 속해 있는 한 초선 회원은 “정치 쟁점이 생기면 모임의 지도부가 회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일 없이 ‘거수기’를 하라고 동원령을 내리곤 했다”며 “내부 소통도 못하는데 대통령에게 어떻게 국민여론을 전달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모임이 갈수록 ‘친이재오계’의 성격을 띤 것도 비판을 받는 요인이 됐다. 특히 4·27 재·보선 직전 이재오 장관이 회원 의원 30여 명을 두 차례 모은 일은 큰 역풍을 초래했다. 다른 진영에서 “선거 후 있을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재오계인 안경률 의원을 당선시키려는 시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결국 6일 실시된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근혜계와 쇄신그룹이 똘똘 뭉쳐 안 의원에게 패배를 안겼다. ‘함께 내일로’의 18일 모임에서 손숙미 의원이 “이재오 장관의 개인 조직인 것처럼 비춰진 것은 정말 문제”라고 한 건 모임을 보는 당내 다수의 시선이 따갑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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