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상·에미상 2회씩 탄 ‘무대의상 디자인의 전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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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세계에선 인종도 성별도 필요 없다. 꿈과 열정만 있으면 된다.”

 94세의 무대의상 디자이너 윌라 김(한국명 김월라·사진)은 여전히 정정했다. 그는 무대의상 디자인으로 ‘뮤지컬의 아카데미상’이라는 토니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한국인으론 처음이다. 발레·뮤지컬이 TV로 방송되면서 ‘방송의 아카데미상’인 에미상도 두 차례 수상했다. 그는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개막한 24명의 한국 디자이너 작품전 ‘2011 Call for Artists’를 찾았다. 후배들의 작품을 보고 격려하기 위해서다.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24명의 젊은 디자이너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디자이너 모임인 ‘D2’ 회원이기도 했다.

 윌라 김의 부친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순권이다. 바로 아래 남동생은 유색인종으론 미군 최초로 대대장까지 오른 전쟁 영웅 김영옥이다. 독립운동에 여념이 없던 아버지를 대신해 윌라 김은 어려서부터 가장 노릇을 했다. 그는 “아버지는 말렸지만 늘 화가가 되는 꿈을 꿨다”고 회고했다.

 로스앤젤레스(LA)의 명문 셰나르 아트스쿨과 캘리포니아 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자신도 모르게 지도교수가 보낸 포트폴리오를 본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선뜻 그를 채용했다. 이곳에서 그는 바바라 카린스카와 라울 보이스 같은 전설적인 무대의상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를 발판으로 뉴욕으로 진출한 그는 1961년 처음 뮤지컬 무대의상을 맡았다. 81년 ‘지적인 여인’과 93년 ‘윌 로저스 폴리즈’로 토니상을 받았다. 80년대 발레·뮤지컬이 방송을 타면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이 공연한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죽은 병사를 위한 노래’로 에미상 의상상을 차지했다. 2007년 그는 무대예술 명예의 전당인 맨해튼 브로드웨이 거쉬인 극장 2층에 400여 명의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름을 올렸다.

 그는 “요즘 젊은 디자이너는 돈과 명예가 따르는 ‘7번가(의상 디자인 거리)’로만 몰린다”며 “무대의상 디자인을 통해 예술에 대한 꿈을 불태워보라”고 조언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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