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쇄신 외친 남경필·원희룡 그들은 12년간 성장 멈췄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 2000년 1월 16일 한나라당엔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가 발족했다. 공동대표는 김부겸·남경필 의원이었고, 원희룡(전 사무총장)·정병국 의원(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오세훈 시장 등이 핵심 멤버였다. <표 참조>

 회원들은 대부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영입한 ‘신진 정치인’들이었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총재였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16대 총선을 앞두고 이인영·임종석·우상호 전 의원 등 학생 운동권 출신들을 ‘새 피’로 수혈한 데 대한 맞불놓기였다. 미래연대는 창립 정관에서 “젊은 세대에 희망을 주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창출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밝혔다. 일종의 ‘세대교체론’이었다.

 # 2011년 5월. 당시 미래연대의 주축 멤버들은 지금 한나라당 신주류로 떠오른 ‘새로운 한나라’를 결성했다. 김부겸 의원 등 일부는 한나라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했고, 일부는 친박근혜계나 구주류인 친이명박계에 속해 있지만 당시의 핵심 멤버들은 ‘새로운 한나라’의 주축들이다. 특히 오는 7월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의 ‘젊은 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남경필 의원을 비롯해 정두언 의원 등 ‘새로운 한나라’의 당권 주자들은 모두 미래연대 출신이다. 한나라당 ‘소장·쇄신파’의 뿌리는 결국 미래연대인 셈이다. ‘새로운 한나라’엔 속해 있지 않지만 미래연대 출신의 원희룡 전 사무총장도 친이계 구주류가 미는 당 대표 주자군에 포함돼 있다.

 12년 만에 한나라당의 신주류로 떠오른 미래연대 출신들은 그간 어떤 과정을 통해 입지를 굳혀갔을까.

 이들은 이른바 ‘정풍(整風)운동’과 함께 성장해 나갔다. 대체로 당이 위기에 빠질 때 지도부를 공격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가장 첫 번째 정풍운동은 이회창 총재가 2002년 두 번째 대선에서 패한 뒤였다. 남 의원과 원 전 사무총장, 정병국 의원 등은 ‘5, 6공 정치인 청산’ ‘60대 용퇴론’ 등을 내세워 당시 최병렬 당 대표 체제를 무너뜨린다.

 또 한번의 정풍운동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9년 4월에 있었다. 인천부평을 등 여섯 곳에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6대 0으로 참패하자 원희룡 당시 쇄신특위위원장과 정두언 의원은 “비선그룹이 정치를 좌우한다”며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공격해 ‘2선 후퇴’ 선언을 이끌어냈다.

 지난 4·27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성남 분당을과 강원도에서 패배한 뒤엔 ‘새로운 한나라’를 중심으로 이재오 특임장관의 2선 후퇴론이 제기됐었다.

 당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과연 자신들은 정치적 책임을 져왔느냐는 것이다.

 남경필·정두언 의원은 민주당에 참패했던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각각 인재영입위원장과 선거기획단장을 맡았었다. 하지만 선거 패배 이후 ‘책임’보다는 ‘쇄신’을 강조하면서 지난해 전당대회에 출마했었다. 원희룡 의원은 이번 4·27 재·보궐선거의 실무 책임자인 사무총장을 맡았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구주류나 친박근혜 의원들은 “자기들은 늘 ‘쇄신파’라면서 책임은 지지 않고 양지만 좇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친이계의 이병석 의원(3선)은 최근 의원총회에서 “남경필·원희룡 의원은 언제까지 소장파냐. 12년 동안 성장이 멈췄느냐”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친박계 인사는 “‘새로운 한나라’는 지금도 ‘젊은 대표론’을 앞세우고 있는데, 결국 ‘세대교체론’ 아니냐. 정치적 ‘비전’은 보여주지 못하고 콘텐트 없이 묵은 주장만 되풀이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정효식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8대)

1965년

[現]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8대)
[現] 한나라당 사무총장

1964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