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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고 손발 묶어 놓고 경쟁력 키우라니 … 평준화 위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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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용산구 배문고는 1981학년도에 서울대 합격자를 67명 배출했다. 하지만 2009학년도에는 2명으로 줄었다. 개교 54년 만에 최대 위기였다. 조하수(59) 교장과 교사들은 “이대론 안 된다”며 머리를 맞댔다. 학생 선발권이 없는 것만 탓하지 말고 교사들 스스로 잘 가르치자며 뜻을 모았다. 우선 맞춤형 교육에 나섰다. 전교생 1100여 명의 실력을 과목별로 4개로 나눠 집중 보충수업을 했다. 한 학기 강의 숫자가 126개나 됐다. 교실이 부족해 보건실과 교사 회의실도 활용했다. 3학년 담임 교사들은 매일 밤 늦게까지 남아 학생들의 부족한 공부를 도왔다. 그 결과 서울대 합격자는 2010학년도 7명, 2011학년도 6명으로 늘었다. 조 교장은 “보충수업은 세분화할 수 있지만 문제는 정규 수업”이라며 “일반고가 교육과정을 좀 더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고가 특목고·자율형사립고(자율고)에 밀려 ‘3부 리그’로 전락할 위기를 벗어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우선 학교의 자율권을 확대해 달라는 의견이 많다.

 본지와 한국교총이 지난달 일반고 교사 38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사들은 일반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31.2%)’를 가장 많이 꼽았다. 박범덕(서울 언남고 교장) 한국국공립고교장회 회장은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게 해주지 않는 한 일반고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며 “묶인 손발부터 풀어줘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자율권이 확대되면 학교별로 특성화가 가능해진다. 배문고 조 교장은 “일반고에도 권한을 준 뒤 특성화를 잘해 내는 학교에 정부가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성호(교육학) 중앙대 교수는 “미국의 ‘차터스쿨(협약학교)’이 빈민가에서 효과를 냈는데 학교에 자율권을 준 것이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18만 교원을 회원으로 둔 한국교총도 17일 교육과학기술부에 ‘일반고 지원 방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교육과정 편성권 확대 등을 요청했다. 한국교총은 의견서에서 “특목고·자율고 등 다양한 학교가 평준화 정책을 보완해 학생 선택권을 확대하고 학교 간 경쟁을 일으켜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린 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일반고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교사들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 대표는 “학원 강사는 학생이 이해할 때까지 붙들고 가르쳐야 살아남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다”며 “교사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친전교조 교육감의 평준화 일변도 정책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성호 교수는 “평준화가 교육기회 확대에 기여했지만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 것도 사실”이라며 “상향과 평준화는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평준화를 통해 학생실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은 ‘평준화의 위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평등교육을 주장하는 일부 친전교조 교육감이 일반고의 경쟁력을 갈수록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만·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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