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출신? 대책 없다” 北처녀들이 손사래 치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에서 5·16은 박정희 정권이 태동한 전환기였다. 그런데 북한에도 5·16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처음 한국에 와서 5·16을 두고 혼란스러워 한단다. 도대체 북한의 5·16은 무엇일까. (주민들에겐) 날씨 때문에 생긴 날벼락이다.

북한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에서 5·16이란 김일성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이 날벼락을 맞은 씁쓸한 사건이다. 김일성은 따뜻한 날씨를 좋아해 5~6월 마다 함경도에 현지시찰을 나오곤 했다.

‘사건’은 1986년 5월 16일 벌어졌다.

으리으리한 별장에서 휴식 중이던 김일성은 당국 관계자로부터 도내 실상을 보고 받던 중이었다. 그러다 공공시설을 건설할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일성은 당시 ‘청년돌격대’란 명칭의 청장년층 집단을 자신의 별장 건설 사업에 동원시켰다. 대학이나 군수공업, 군인을 제외한 수많은 남성들이 이 별장을 짓는 데 투입됐다.

식량은 물론 전력시설, 운송기재, 건설기계 등 모든 자원이 부족했던 북한이었지만 80여 채의 김일성 별장 만큼은 사냥과 낚시를 즐기기에 손색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지었다. “인민은 찢어지게 가난한데, 김일성은 터지게 잘 산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김일성은 새삼 공공시설이 볼품없이 초라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청년돌격대'를 5·16 공공건설업체로 개편하라고 지시했다. 공공건설 사업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김일성이 경제위기를 빠져나가기 위한 술수였다. 당초 김일성은 5·16공공건설업체에 정부 차원에서 식량과 생필품, 월급(1인당 45원)을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공공건설업체로 전환되자 마자 도 자체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 토사구팽된 것이다.

현재 5·16출신들은 북한에서 최악의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이 됐다. 혼기를 앞둔 젊은 여성들은 5·16출신이라면 “대책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이들은 무직, 이혼, 절도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김진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